기사제목 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① 태종과 흥선대원군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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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① 태종과 흥선대원군의 경우

명확히 단일화 안된 권력구조, 시작이 선의였어도 나쁜 결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기사입력 2019.01.0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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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박사이자 페이스북에서는 ‘역사 덕후’로 알려진 정재웅 님이 ‘군주제에서 권력 구조의 문제’라는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매주 금요일 업로드 되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옹정제.jpg▲ 옹정제(雍正帝)는 청 제국의 제5대 황제(재위 1722~1735)이자,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한 직후 청이 산해관에 입관한 후로는 세번째 황제이다. 성과 휘는 아이신 교로 인전(愛新覺羅胤禛), 묘호는 세종이며, 연호는 옹정(雍正)이다.

군주제에서 한 국가의 모든 최종적인 권한은 군주에게 있다. 이 최종 권한은 군주 개인에게 말 그대로 “큰 힘과 큰 의무”를 지운다.


미야자키 이치사다 선생이 청 세종 옹정제 아이신기오로 인전을 “역사상 가장 양심적인 독재 군주”라 평하는 것도, 그가 “이 한 몸을 위해서 천하를 희생시키지는 않으리라”고 말하며 워커홀릭 수준으로 국사를 돌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반대로 군주 한 명이 아둔하여 나라를 망친 경우도 많다. 이는 모두 군주제에서 군주 한 명이 최종적인 모든 의사결정권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특히 동양적 전통에서 군주는 하늘의 명을 받았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권력과 권위는 절대적인 수준이 된다. 


저 절대적인 수준의 권력과 권위를 암군 혹은 폭군이 사용하는 일은 우리가 역사에서 익히 알고 있듯이 심각한 문제가 된다.


명말 4대 암군 혹은 폐주 연산이 문제가 되는 이유도 그들이 무능력하거나 혹은 황음무도하여 저 권력과 권위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데 있다.


물론 조선의 경우엔 국왕도 한 사람의 유학자이자 군왕으로서 도를 따랐기에 그 권력의 행사에는 제약이 많이 따랐지만, 어찌되었든 최종적인 의사결정권과 신민의 생사여탈권을 보유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기에 이러한 군주제에서 군주의 문제에 더해 심각한 문제는 권력 구조가 명확하지 않고 적층적인 경우다. 


그렇기에 이 글과 이어지는 글에서는 동북아시아 군주제에서 적층적인 권력 구조의 문제를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이 글에서는 조선의 경우다. 


구글이 생각하는 이방원.jpeg▲ 구글이 인식하고 있는 ‘조선 태종 이방원’의 얼굴이다….

조선 태종 이방원은 세조가 롤모델로 삼았을 정도로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군주다. 본인도 과거에 급제했을 정도로 학문도 깊었고, 고려에서 관료 생활을 하였기에 관료들의 생리도 잘 알고 있었기에 관료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그들을 통제하는 일이 가능했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태종이 왕위에 오르는 길은 유혈이 낭자했지만, 그가 저 유혈을 감수하면서 왕위에 오른 목적은 딱 하나다. 새로운 왕조의 기틀을 만드는 것.


그렇기에 태종은 삼봉 정도전이 추진했다가 목숨을 잃은 계기가 된 사병을 혁파했고, 조선의 군제를 정비했으며, 정도전 개인의 능력에 의존한 까닭에 태조 재위기에 미처 정돈되지 못한 조선의 제도를 정비했다.


고려의 합의기구인 도평의사사가 완전히 폐지되고 의정부가 설치되었는가 하면 그 이전까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했던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게 힘을 실어주어 권력의 견제 기능을 만들었다. 조선 초기 전제가 정비된 것도 태종 재위기다.


이렇게 막강한 왕권을 휘두른 태종은 그러나 재위 18년째인 1418년, “18년 동안이나 호랑이 등에 타고 있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과 함께 왕위를 세자 충녕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난다.


하지만 권력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으니, “주상이 아직 미숙하니 군국의 중대사는 저와 의논해서 결정하도록 하세요”라고 하며 군사 관련 최종 의사결정권을 보유하였다.


이는 중국 공산당에서 국가주석과 당 총서기 직은 차기에 넘겨주더라도 중앙 군사위 주석 자리는 보유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권력은 칼 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력의 속성을 알지 못하고 어설프게 줄타기를 하다가 숙청된 경우가 강상인이다.


병조참판이던 강상인은 군령과 관련된 오매패와 상아패를 태종에게는 “관리를 부리는 것”이라 하고 세종에게는 “군사를 부리는 것”이라 다르게 말했다가 기군망상의 죄로 처형된다.


대왕세종 강상인.jpg▲ 강상인은 “나는 실상 죄가 없는데, 매(楚)를 견디지 못해 죽는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능지처참(거열형)을 당했다.

이처럼 군사와 관련된 세종 재위 초기 태종의 업적으로 기해동정(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적층적 권력구조는 아마도 장기간 지속되었으면 태종에게도 세종에게도 좋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세종이 효성이 지극한 성군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태종이 아들바보 군왕이라고 하더라도 권력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태종은 상왕이 된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조선의 최종 의사결정권은 세종에게 귀속된다.


이러한 태종과 세종의 반대 경우가 흥선대원군 이하응과 고종 간 관계다.


흥선군 이하응의 아들 이명복은 12살 어린 나이에 신정왕후 조씨의 결정으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조선 26대 임금 고종이다.


즉위 이후 3년 동안은 효유대왕대비 조씨가 수렴청정을 하였으나 곧 물러나고, 모든 권력은 조선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살아있는 대원군이 된 흥성대원군 이하응에게 돌아갔다.


사실 효유대왕대비 조씨의 수렴청정 기간에도 최고 권력은 흥선대원군이 보유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모든 결정을 효유대왕대비와 흥선대원군이 상의하여 내렸기 때문이다. 


수렴청정이 종결된 이후에는 고종이 본인이 내린 의사결정을 운현궁으로 보내 흥선대원군으로주터 재가를 받는 형태로 막후정치를 하였다. 일본의 바쿠후 정권 수준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옥상옥의 권력구조가 된 것이다.


흥선대원군과 고종황제.jpg▲ 흥선 대원군과 고종 황제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무리 국왕의 친부 혹은 막강한 권한을 지닌 섭정이라고 하더라도 국왕의 장성과 함께 권력을 넘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술한 것처럼 권력의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권력을 넘기지 않았고, 그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고종을 등에 업은 혹은 고종을 내세운 민비와 흥선대원군의 권력 투쟁과 흥선대원군의 실각.


이러한 태종과 흥선대원군의 경우를 통해 우리는 분할된 혹은 적층된 권력 구조의 문제를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권력 구조는 사실 그 구조 자체가 문제다. 이원집정부제 혹은 분권제가 확립된 공화정과 달리 군주제에서는 모든 의사결정권한이 군주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데, 그것의 분점은 곧 잠재적인 권력 투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태종이 양위 이후 4년 만에 세상을 떠나지 않고 군국의 중대사를 더 오랫동안 결정했을 경우 조정이 양분되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태종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상당 기간 조정의 주요 신료는 태종의 신하였다. 흥선대원군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즉 명확하게 단일화되지 않은 권력구조는 아무리 그 시작이 선의였다고 하더라도 나쁜 결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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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파드마
    • 역사에 관심 있어도 재미있게 읽기만 했을 뿐
      '권력구조'와 관련된 심화학습이 없었음을 확인합니다. ㅠㅠ

      '동북아시아 - 조선'으로 시작하시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ㅋ

      먼저, 권력구조의 단일화 유무에 따라
      단일화된 권력구조 vs 단일화되지 않은 권력구조 (분활된 권력구조, 적층적 권력구조)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기자님 글을 따라
      차근차근 정독하다 보면
      차츰차츰 하나씩 알게 되겠지요.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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