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대학에서 본 민주주의② 실패한 투쟁, 죽은 학생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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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본 민주주의② 실패한 투쟁, 죽은 학생사회

투쟁의 연속에 질려 탈 정치화된 학생사회…대한민국 사회와 닮아있다
[권용진(민주주의를 고민하는 대학생) 기자 a85440235@gmail.com]
기사입력 2018.12.0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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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본부 점거-물대표 0311.jpg


지난 글에서는 서울대학교 시흥캠 투쟁을 둘러싼 갈등 양상을 간략히 짚어보았다. 시흥캠 투쟁이 2016년 10월을 기점으로 과격화, 장기화되다가 학생 여론이 돌아서면서 2017년의 4·4 총회로 변곡점을 맞았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그렇다면 2017년 4월 4일 이후 시흥캠 투쟁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총회에서 3번째이자 마지막 안건으로 다루었던 ‘투쟁 방식 선택의 건’에서 ‘행정관 재점거’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으나 과반을 넘기지 못했다. 이외에도 총회 시행 세칙상 여러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여 재투표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하철이 끊겨가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속속 귀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학생총운영위원(각 단과대 학생회장 등 학생 대표들)으로 구성된 의사조정위원회는 수천 명의 학우들을 덩그러니 방치한 채 무슨 내용이 오가는지 알 수도 없는 ‘밀실’ 회의를 지루히 이어갔다.

철저히 관리되어야할 비표 수백 장은 구겨져 바닥에 굴러다니고 하늘에 흩날렸다. 학생회 측은 심지어 정족수를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퇴장하려는 학생들을 막아섰다.

결국 견디다 못한 일부 학생들이 ‘탈출’하는 기이한 상황도 연출되었다. 서울대의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맹목적 신앙이 되어 개인을 억압하고 있었다.

더 이상 총회의 정족수를 유지할 수 없었다. 첫 안건에서 모든 사태의 원흉인 성낙인 총장을 쫓아내기로, 다음 안건에서 시흥캠 철회 투쟁 기조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마지막 안건에서 투쟁 방식을 결정하지 못한 채 총회는 막을 내렸다. 대학생들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의 현장에 한껏 들떠있던 수많은 학우들, 특히 신입생들은 무력감과 회의에 빠졌다.

수천 명의 학생은 원성과 탄식을 내지르며 광장을 빠져나갔다. 학생회는 학생을 배제했고, 4월 4일의 총회는 실패했다.

서울대 본부 점거-20170404 전체학생총회.jpg▲ 2017년 4월 4일 열린 학생총회.
 
서울대 본부 점거-20170404 전체학생총회2.jpg▲ 2017년 4월 4일 열린 학생총회.

한 달이 지나 5월 1일, 뜻밖의 뉴스를 접했다. 학생들이 행정관 건물을 기어코 재점거했다는 소식이었다.

분명 최고의결기구인 학생총회는 투쟁 방식을 채택하지 못한 채 무산되었다. 그런데 ‘학생 총의’라는 이름을 내걸고 행정관의 유리를 깨고 진입한 소수가 있었다.

바로 일부 ‘운동권’이었다. 총회가 무산되자 일반 학우들의 관심은 멀어졌다. 재점거 당일 진행된 학생총궐기에도 고작 300~500명의 학생이 모였다. 함성이 울리던 4월 총회에 비해 한없이 초라한 규모였다.

그런데 ‘학생 운동 세력’을 자임하는 일부가 학생 총의를 실현하겠다며 행정관을 부수고 들어갔다. ‘국회’ 안의 ‘원내대표 회담’ 격인 학생총운영위원회(이하 총운위)가 동의했다는 명분에서였다.

총운위는 성향 차이가 뚜렷한 운동권과 비운동권으로 양분되어있었다. 항상 격렬한 논쟁이 오갔다. 그런 총운위에서 학생총회에서 이미 부결된 사안을 정식으로 의결했다는 주장은 처음부터 말도 안 되었다.

학우 대부분은 이미 대표자들에 실망한 지 오래였기에 혀만 끌끌 찼다. 지금도 태반이 그 내부사정을 알지 못한다. 그 사이 책임자들은 피해자로 둔갑해 신입생들을 현혹했다. 운동권 일부의 행패는 숭고한 투쟁으로 포장되었다.

그들은 추악했다. 이야기는 다시 격정의 2017년 봄으로 돌아간다.

운동권은 2017년 4월 마지막 날 일제히 공세를 폈다. 그들은 다음 날 총운위를 소집하자며 ‘비운동권’을 포함한 반대 성향의 위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안건조차 알려주지 않은 채 “네가 해줄 일이 있으니 그저 내일 X시에 X로 나오면 된다”고만 통보했다.

서울대 본부-20170501 농성장 인원교대.jpg▲ 2017년 5월 1일 서울대 본부를 점거하고 있던 학생들이 인원 교대를 시도했지만 대학본부의 거부로 문 앞에서 대치하는 모습.

운동권은 일사불란했고 비운동권은 우왕좌왕했다. 결국 운명의 5월 1일, 운동권 다수와 비운동권 극소수가 참석한 총운위에서 행정관 재점거를 의결했다. 일부가 정당성 없는 표결이라며 결사반대했으나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었다.

끝내 행정관의 창문이 깨졌다. 민주주의도 부서졌다. 공론장에 결국 학우 일반의 목소리는 없었다.

학생사회에 대한 회의가 판을 쳤다. 의욕적이던 비운동권 대표들마저 그로기에 빠졌다. 관심은 계속 줄어갔다. 그 누구도 움직일 수도, 움직이려 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총의’를 온전히 자신들의 소유물로 전락시킨 소수의 ‘진보적인’ 엘리트만이 흥에 겨워 춤을 추었다.

첫 점거에서는 비록 의견이 분산되었을지언정 모두가 그들을 응원했다.

학교 본부에서 용역을 동원해 학생들을 강제로 끌어내고 ‘물대포’를 쏘았던 그날, 지옥의 현장을 멀리서 지켜보며 울분을 토해내던 이, 가까이서 지켜보며 저도 모르게 눈물을 쏟던 이, 현장에서 함께 비명을 질렀던 이가 모두 하나였다. 분노한 학생들은 하나 되어 소리쳤다.

거의 신입생, 재학생이 분노의 목소리에 감화되었다. 4월 4일 총회는 그렇게 성사되었다. 실패했을지라도 민주적이었다.

반면 5월 1일의 두 번째 ‘점거자’들 곁에는 학생이 없었다. 분노도 없었다. 투쟁은 동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그들은 투쟁했다. ‘학생’이 아닌 ‘투쟁’을 위해 ‘투쟁’했다. 학생사회 전체로부터 단순 일탈에 불과한 그들의 행동은 쉬운 먹잇감이었다.

본부는 곧 점거를 해제했다. 점거자들은 학교로부터 정학 처분을 받고 고소당했다. 고소는 취하되었지만 정학 처분 기록은 남았다.

그들은 행정소송을 진행하며 학우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왔다. ‘너희의 뜻을 우리가 실현했는데 왜 돕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미세한 동정 여론이 있었지만 지지를 받기엔 역부족이었다. 운동권은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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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캠퍼스 철회 투쟁도 자취를 감추었다.

운동권은 새로운 투쟁 의제를 발굴해야 했다. 표를 깎아먹는 시흥캠 의제는 독이 될 뿐이었다. 그들은 뜨겁던 투쟁 구호가 무색해지리만큼 냉혹했다.

반대편에 선 비(非)운동권은 사실상 탈(脫)정치화되었다. ‘투쟁을 멈추고 학생 복지만을 챙기겠다’고 외치며 굵직한 학내 사안에서는 완전히 손을 뗐다.

결국 강경파 운동권이 원하던 전면 철회도, 온건파 비운동권이 원하던 청사진 구상도 물거품이 되었다.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는 지금도 지어지고 있다. 학생 중 누구도 어떻게 짓는지, 얼마나 지었는지 모른다. 누구도 무엇이 어떤 형태로 들어갈지 모른다.

시흥캠 투쟁은 민주주의가 과두화될 때의 폐해를 보여주었다. 투쟁은 일순간 엘리트들의 구호와 수사로 점철되었다.

두 번의 총회는 결과적으로 학생사회에 상처만 남긴 채 실패의 역사가 되었다.

대한민국에 국회와 정당이 있다면, 대학에는 학생회와 정파가 있다. 각 정파는 각자의 이슈 영역을 새로이 파고들었을 뿐이었다. 표를 받지 못하거나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이슈에서는 손을 뗐다.

운동권은 사회변혁을 외쳤다. 그러나 사회 변혁은 고사하고 실효성 있는 이슈 발굴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약삭빠르고 고지식한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비운동권은 실질적인 학생참여를 증진시키겠다며 일견 ‘실용주의적’으로 보이는 기조를 내걸었다. 그러나 거대한 정치투쟁의 국면에서 그들은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며 본래 목표를 실현하지 못했다. 두 정파의 독선과 무능력은 학생사회 자체의 퇴행을 낳았다.

서울대 본부-7월 19일 정부서울청사 앞 집회 공지.jpg▲ 서울대 총학생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은 지난해 7월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시흥캠퍼스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대정부 집회를 갖고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했다.

학생사회는 죽었다. 더 이상 과거처럼 권위주의 정부, 그리고 독선적인 대학본부가 무조건적 투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조금의 독선이 잔존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에 투쟁할 수준으로 조직되지 않는다. 공동체의 안녕을 챙기기보다는 개인의 삶에 조금 더 집중해도 괜찮은, 혹은 집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투쟁의 연속에 질린 학생사회는 탈(脫)정치화되고 있다.

학생사회는 대한민국 사회와 닮아있다. 오늘날 아크로폴리스에서 치열하게 토론할 소크라테스들은 사라져간다. 우리 공동체는 물질적으로 진보하고 거대화되는 동시에 그 반작용으로 파편화되었다. ‘소크라테스 없는 시대’의 도래는 필연이다.

누군가는 민주주의가 실패했다고 말한다. 무지한 대중은 소수의 선동과 농간에 놀아날 뿐이라고. 오늘날 필요한 것은 다수의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소수의 플라톤, 다시 말해 엘리트라고. ‘엘리트정치가 필요하다’는 명제는 과연 타당한 것일까?

만일 이 명제가 타당하지 않다면 ‘소크라테스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 개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학생사회는 어떻게 부흥할 수 있을까? 더불어 대한민국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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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드마
    • 첫번째 글에서 '집단지향의 개인주의', '20대의 두려움'이
      두번째 글 '투쟁을 탐구했다' 가
      인상적이었어요.

      세번째 글은
      운명의 5월 1일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셨네요.

      그런데
      운동권, 非운동권 / 투쟁  / 학생사회의 脫정치화 /
      민주주의가 과두화될 때의 폐해 /
      광장에서 치열하게 토론할 (다수의) 소크라테스가 없는 시대 / 무지한 대중 /
      (소수의) 플라톤 / 엘리트 정치 /
      시민개개인 / 학생사회 / 대한민국

      이렇게 전개되어가는 글이  혼란스러웠어요.. 물음표가 자꾸만 튀어나와서요.
      튀어나온 물음표들은 결국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하나의 물음으로 모아졌고
      또다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글들을 읽다 보면
      세번째 글의 혼란스러움이 차츰 없어지겠지요. ^^

      생생한 경험과 그 경험에서 비롯된 고민과 성찰은 늘 여운이 깊습니다.

      귀한 글, 고맙습니다.^^

      (덧)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고대 아테네의 아리스토텔레스를
      시대환경이 너무나 다른 20세기 현대 정치철학에 접목시켰다는 게
      저는 선뜻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3인방에서 벗어나
      새로운 민주주의 정치철학을 창조한 책이 언제쯤 출간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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