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국산 준중형차의 새 판로 개척한 엘란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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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준중형차의 새 판로 개척한 엘란트라

우리나라 첫 준중형차…짧은 시간 존재했지만 잊혀지지 않을 존재감
기사입력 2018.12.0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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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이든 중년층이든 장년층이든 ‘너무 튀어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없어보이지도 않는’ 차를 고르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아반떼급의 준중형 승용차를 선택할 것이다.

유럽에서는 C-세그먼트, 북미에서는 Compact Car라고 불리는 이 준중형차라는 차급은 소형차와 중형차의 사이에 위치하는 차급으로, 사실 우리나라의 자동차 관리법 규격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차급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관리법은 승용차를 경차, 소형차, 중형차, 대형차로 구분하고 있다.

①경차는 배기량 1000cc 미만이고, 길이 3.6m 이하, 너비 1.6m 이하, 높이 2.0m 이하인 차량 ②소형차는 배기량 1000cc 이상이거나 1600cc 미만, 길이 4.7m 이하, 너비 1.7m 이하, 높이 2.0m 이하인 차량 ③ 중형차는 배기량 1600cc 이상이면서 2000cc 미만이거나, 길이, 너비, 높이를 소형보다 1개 이상 초과하는 차량 ④대형차는 배기량이 2000cc 이상이거나, 길이, 너비, 높이 모두 소형을 초과하는 차량을 의미한다.

통상 준중형차는 소형차로 분류되기에, 소형차와 중형차 사이에 있는 준중형차에 대한 정의를 자동차관리법을 참고하여 내리면 ‘길이가 4.7m 이하, 너비가 1.7m 이하, 높이는 2.0m 이하이면서, 배기량이 1500-1600cc인 승용차’라고 할 수 있겠다. 

도요타 코롤라.jpg▲ 현대적 의미의 준중형차의 효시 격인 도요타 코롤라 1세대

오늘날 ‘준중형차’하면 떠오르는 차는 흔히들 아반떼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인 문짝이 네 개 달리고 사람 다섯 명이 탈 수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승용차의 최초는 1966년 출시된 도요타 코롤라 1세대다.

소형차인 퍼블리카와 중형차인 코로나의 사이를 메우기 위한 차종으로 개발되었기에 준중형차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에는 소형차인 퍼블리카가 800cc 급이었고, 중형차인 코로나가 1500cc급이었기에 코롤라에는 1100cc 엔진이 장착되었다.

1970년 출시된 도요타 코롤라 2세대(E20)부터는 상위 모델인 중형차 코로나에 1900cc와 2000cc급 파워트레인이 탑재되면서, 준중형차 코롤라에 1400cc급과 1600cc급 엔진이 올라가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도요타 코롤라의 2세대에서부터 현재의 준중형차가 구현된 것이다.

미국에서 싸구려 자동차 취급이나 받았던 도요타는 코롤라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으로, 저렴하고 질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자동차 메이커로서 인식되게 되었으며, 코롤라의 성공에 고무된 혼다가 1972년 ‘저공해 엔진’을 모티브로 둔 시빅을 출시하게 하고, 폭스바겐도 골프의 세단형 모델인 골프를 1979년 출시하게 하게 하는 등 세계적으로 준중형차 제조가 확대되게 만드는 데 극적인 기여를 했다.

그렇다면 당시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땠을까? 당시만 해도 절대 빈곤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에, 우리나라의 자동차 시장은 소형 아니면 중형차로 양분되어 있었다.

1976년 현대자동차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를 출시한 이래, 현대자동차는 소형차 포니와 포드의 그라나다를 뱃지 엔지니어링해 제작한 ‘그라나다’ 두 개의 선택지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했으며, GM과 협력한 대우자동차에서는 소형차 ‘맵시’와 중형차 ‘로얄 살롱’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했다.

자동차의 보급이 많지 않았던 시절, 서민들에게 자가용은 언감생심이었고, 중산층 가정에서는 소형차를, 부유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중형차를 구입했다.

그러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경제성장으로 더 많은 서민들이 중산층으로 진입했고, 서민 가정의 소득도 증가함에 따라 서민층들은 더 이상 포니와 맵시 같은 공간도 좁고 크기도 작은 소형차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중형차급을 구입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던 상황.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는 각각 스텔라와 로얄 XQ를 출시한다.

그러나 이 차들은 말로만 준중형차였지, 중형차의 차체에, 엔진만 1500cc 짜리 엔진을 얹어놓은 모델이었기 때문에, 출력이 부족해 잘 달리지 못하고, 차가 어딘가 부실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도 막 서민층 티를 벗기 시작해 큰 차를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구매욕은 잘 자극해 위 두 자동차는 단종될 때까지 매달 성수기에는 1만대씩, 비수기에는 4천대씩 팔리는 등 제법 잘 판매되었다.

“현대, 대우 자동차는 승용차만 생산하고, 기아자동차는 상용차만 생산한다”는 전두환 정권의 기상천외한 ‘자동차산업 합리화정책’이 민주화와 함께 폐기된 지 2년이 지난 1989년, 기아자동차에서도 현대자동차의 스텔라와 대우자동차의 로얄 XQ의 후속작인 로얄 듀크에 대적하기 위해 캐피탈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로얄 듀크, 스텔라와는 달리 주행성능이 우수한 마쓰다의 B5엔진을 장착해 ‘고 RPM’에서 가속이 잘 되었다고 하나, 캐피탈 역시 중형차 콩코드의 차체를 살짝 개량해 1500cc 엔진을 얹은 모델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실질적인 의미의 준중형차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26-elantra-640x412.jpg▲ 1990년 10월 출시된 엘란트라 초기 모델. 현대자동차의 첫 독자 개발을 통해 국제 랠리 우승까지 거둔 수출전략형 준중형 승용차인 엘란트라는 ‘고성능 패밀리카’를 지향한 모델이다.

중형차와 소형차 사이에 위치하는 실제 의미의 준중형차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국산차는 1990년 10월 25일 현대자동차에서 출시한 엘란트라다.

이름의 뜻은 열정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elan과 수송, 운반을 뜻하는 영어 transport의 합성어다. 1987년 J-1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개발하기 시작하여 3년 만에 세상에 나온 엘란트라는 미쓰비시 미라주 3세대의 파워트레인과 언더바디를 이용해 개발되었고, 주지아로의 이탈디자인이 디자인을 담당했다.

본래 J-1프로젝트는 스텔라의 후속 모델을 개발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1988년 출시된 스텔라의 고급화 모델인 ‘진짜 중형차’ Y2 쏘나타가 성공하며 중형의 탈을 쓴 가짜 준중형차인 스텔라의 파이까지 잠식하자, 현대자동차는 아예 중형차와 소형차 사이에 준중형차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자는 의도 하에, 컨셉을 ‘고성능 세단’으로 잡고, 엘란트라를 내놓은 것이었다.

당시에는 현대자동차가 많은 부분 미쓰비시에 종속되었기 때문에 미쓰비시의 기술을 많이 사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가절감과 국산화를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 1100여 개의 부품은 국산화하는 기염을 토했다.

고성능 세단이라는 광고에 걸맞게 엘란트라는 높은 성능을 가진 세단으로서의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엘란트라에는 미쓰비시의 1500cc 오리온 SOHC 엔진과 1600CC 시리우스 DOHC 엔진이 탑재되었는데, 두 엔진 모두 내구성과 성능이 평균 이상으로 탁월하게 좋았다.

특히 1600cc급 시리우스 DOHC 엔진의 경우 미쓰비시 미라주의 스포츠카형 모델인 사이보그 모델에 들어가던 엔진으로, 126마력의 최대 출력과 15.3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2006년 출시된 현대자동차의 아반떼 HD에 장착된 1600cc 감마 엔진의 최대출력이 124마력, 최대토크가 15.9kgm이었으니, 당시 엘란트라에 장착되었던 1600cc 엔진의 위력은 가히 엄청났던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1500cc 이상 급부터는 중형차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1600cc 모델을 구입하게 되면 자동차세가 기하급수적으로 뛰어올랐으므로, 1600cc 모델은 많이 판매되지 못했고, 대부분의 엘란트라 소비자들은 1500cc 모델을 구입해서 엘란트라 1600cc 모델의 괴물 같은 성능을 체험한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4.3m의 길이와 2.5m의 휠베이스로 중형차에 비해서는 컴팩트하지만, 소형차에 비해서는 넓은 차체를 소유한 엘란트라는 볼륨감이 있는 형상과 우수한 주행성능, 인체공학적인 차량설계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던 디자인 덕에 판매시작 한 달 만인 1990년 11월, 기아 캐피탈을 제치고 중소형차 시장 1위 자리에 등극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1991년 2월부터는 미국 수출을 시작으로, 호주, 싱가포르, 유럽 등 세계 각국에도 수출되기 시작하여, 대한민국산 자동차의 인지도 향상에도 일조했다.

이처럼 엘란트라가 성공하자 국내의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도 경쟁적으로 준중형차를 내놓기 시작한다. 엘란트라가 세운 또 하나의 공이자 결정적인 공인 국내 준중형차 시장의 판로 개척이다.

1991년 2월 대우자동차는 본래 중형급으로 판매하고 있었던 에스페로에 자체 개발한 1500cc급 100마력 DOHC 엔진을 얹은 에스페로 1.5를 내놓는다.

이에 질세라 기아자동차도 1992년 9월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설계해 생산하고, 캐피탈에 장착되었던 마쓰다의 1500cc 엔진을 얹은 세피아를 출시한다.

기아 세피아.png▲ 엘란트라의 대항마로 출시된 기아 세피아의 출시 광고. 지금은 현대차와 기아차가 계열사지만 이때는 경쟁업체였다.

에스페로는 오늘날에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고 평가받는, 당시로서는 이질적인 디자인과 엘란트라와 세피아에 비해 긴 휠베이스와 본래 중형 세단으로 만들어진 한계 때문에 많은 판매고를 올리지 못한 반면, 세피아는 1992년 출시된 이래 1년 만에 최단기간 10만대 판매를 올리고, 1993년에는 대전 엑스포 공식 차량으로 선정되는 등 나름의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1992년과 1993년 각각 12만대와 13만대를 판매하며, 국내 최다판매차량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엘란트라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이 무렵 엘란트라는 다소 황당하고 임팩트 넘치는 과장광고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91년 독일 수출을 기념해 만들어진 이 광고는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포르쉐와 엘란트라가 질주를 하는 모습으로 시작되는데, 치열한 경주 끝에 엘란트라가 세계적인 유명 스포츠카 포르쉐 911을 따돌리고, 포르쉐 운전자가 엘란트라 운전자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아우토반 광고.jpg▲ 엘란트라 TV광고 아우토반 편. 포르쉐 운전자 “나는 1단으로 달렸다!?”

상당한 과장 광고로, 일각에서는 “포르쉐 운전자가 나는 1단으로 달렸다는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고 비아냥성 비판도 잇따랐지만, 그래도 엘란트라의 고성능을 짧은 광고 속에 압축적으로 잘 표현해냈다는 점에서 광고전문가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엘란트라의 고성능 세단이라는 이미지는 상술한 미쓰비시 시리우스 DOHC 엔진의 성능에서 나타나듯이, 전혀 과장된 것은 아니라서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안 랠리 비개조 부문에서 유수의 메이커들을 제치고 2년 연속 1위를 달리는 위세를 발휘하기도 했다.

1993년 4월 엘란트라는 부분 변경 모델인 ‘뉴 엘란트라’로 다시 태어난다. 길이와 너비가 10cm 정도 늘어났고, 각진 디자인에서 유선형의 디자인이 대세가 된 추세에 걸맞게 곡선이 다소 가미되었다.

차체 뿐만 아니라 전면부 헤드램프 프도 곡선 타원형으로 수정되었으며, 후미등은 기존의 E자형에서 L자형으로 바뀌어, 보다 세련된 인상을 주었다.

국내 판매량은 적었지만 수출 확대를 위해 쏘나타에 들어가는 1800cc 시리우스 DOHC 엔진을 장착한 1.8모델을 새로 선보였으며, ABS와 운전석 에어백을 옵션 사양으로 장착 가능하도록 했다.

이렇게 기존 모델과 부분 변경 모델을 포함하여 엘란트라는 5년간 국내에서 약 58만 대, 해외에서 약 36만 대의 판매하는 등 도합 약 100만 대의 판매실적을 올리면서 국내에서는 준중형차 시장을 개척하고, 국외에서는 한국산 자동차의 외연 확대에 기여하는 등 짧지만 굵은 임팩트를 남기고 1995년 3월 후속작인 아반떼가 출시되며 단종 된다.

그러나 미국, 중국 등 일부 국가에는 엘란트라가 남긴 거대한 영향 덕에 아반떼가 아직까지도 엘란트라라는 이름을 달고 수출되며, 현대자동차 또한 엘란트라를 준중형차의 대명사 아반떼의 조상으로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 첫 준중형차였던 엘란트라는 짧은 시간 존재했지만 그 존재감만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엘란트라 1993.png▲ 1993년 엘란트라의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모델 출시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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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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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ah79
    • 아우토반 ㅋㅋㅋ 그나저나 어떻게 이런 자료를 다 취합해셨는지 대단하십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1
  •  
  • 찬재
    • imf때 너무 망해버렸어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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