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신성로마제국 선제후 이야기② 대공위 시대와 금인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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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 선제후 이야기② 대공위 시대와 금인칙서

영지에서 ‘독립된 왕’ 지위 얻게 된 선제후…후대의 혼란 초래
기사입력 2018.12.0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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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962년부터 1806년까지 840여년간 지금의 독일을 중심으로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북부 이탈리아 그리고 폴란드와 프랑스 일부까지 넓은 권역을 지배한 신성 로마 제국은 고대 로마 후기의 ‘황제’를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 하고 여러 제후국을 휘하에 둔 나라였습니다.

신성 로마 황제는 선제후(選帝侯, 라틴어: Princeps Elector, 영어: Prince-elector)라는 이름의 선거인단이 뽑았는데, ‘선제후’들은 백작이나 공작, 대공 등의 직책을 맡고 있었으며 위계상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의 봉건 제후들 가운데서도 황제 다음으로 높았다고 합니다.

경제학 박사이자 페이스북에서는 ‘역사 덕후’로 알려진 정재웅 님이 뉴비씨에 ‘신성로마제국 선제후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연재물은 매주 금요일마다 업로드 되니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1250년, ‘Stupor Mundi(세계의 경이)’ 프리드리히 2세가 세상을 떠났다. 물론 제위는 그의 아들인 콘라트 4세가 계승했지만, 그 역시 교황에게 파문을 당하고 각지에서 이어지는 반란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콘라트 4세가 1254년 사망한다. 콘라트 4세에게는 콘라딘이라는 아들이 있었지만 고작 2살이 불과했기 때문에 제위 계승에서 배제되었고, 이미 프리드리히 2세 재위기에 대립황제로 즉위한 바 있는 홀란트 백작 빌헬름 역시 1256년에 세상을 떠난다.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선제후를 포함한 제국의 유력 제후들은 분열된다.


라인 연안의 제후들은 영국왕 헨리 3세의 영향으로 헨리 3세의 동생인 콘월 공작 리처드(재위 1257~1272)를 독일왕으로 선출했는가 하면, 다른 세력은 프랑스왕의 지지를 등에 업고 카스티야왕 알폰소(재위 1257~1275)를 옹립하였다.


두 명의 외국인 출신 대립왕은 누구도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교황은 이러한 사태를 즐기며 두 명의 대립왕 누구에게도 황제 대관을 하지 않았다.


결국 장기간 제위가 비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이게 이른바 ‘대공위 시대’다. 


800px-Das_Interregnum_Drei_Männer_am_Grab_eines_Kaisers.jpg▲ 『Chronicon pontificum et imperatorum』(Chronicle of the Popes and Emperors, 교황과 황제 연대기, 1450년 발간)이라는 책에 들어있는 이 삽화는 대공위 시대를 묘사한 것으로,3명의 남자가 황제의 무덤 옆에 서있는 모습 위에 “로마 제국에 황제가 없던 시간”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교황이 자신의 경쟁자인 황제위가 공석인 사실을 즐기는 동안 유야무야 20년의 세월이 지났고, 그동안 독일의 상황은 한층 더 혼란스러워졌다.


이에 보다 못한 교황 스스로도 제국에 황제가 필요함을 절감하였고, 유력 제후들의 세력 다툼에 시달리던 중소 제후와 자치도시들도 황제의 즉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1273년, 교황 그레고리오 10세의 요청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황제 선출을 위한 선제후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 모인 선제후는, 그렇지만, 누구도 후보로 나서지 않으면서도 다른 유력 선제후가 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제후의 권력을 위협하지 않는 한미한 가문 출신을 황제로 선출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고, 결국 프리드리히 2세의 대자(代子 godson)이자 유력 가문들과 혼인 동맹을 맺고 있던 스위스 아르가우 지방의 백작인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4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1세로 선출된다.


이로서 대공위 시대는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Rudolf-I.png▲ 합스부르크 왕가의 첫 로마 왕(신성로마제국 황제)으로 즉위한 루돌프 1세(독일어: Rudolf von Habsburg, 1218.5.1-1291.7.15). 루돌프 1세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는 600여년 동안 유럽 최고의 권력가로 떠올랐다.

여담으로 루돌프는 백작이 황제로 선출된 첫째 사례다. 이전까지는 공작이 황제로 선출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제국의 변방인 스위스 아르가우 지방의 백작이었지만 야심만만했던 황제 루돌프 1세는 오스트리아 공령, 케른텐 공령, 슈타이어마르크 공령을 획득하여 근거지를 스위스에서 오스트리아로 옮긴다.


이러한 모습을 본 다른 제후의 반발로 루돌프는 정식 대관식을 하지는 못했지만, 교황은 그를 황제로 인정했고, 이후 한동안 이처럼 대관을 받지 못하고 제위를 이어가는 시대가 지속된다.


800px-Rudolph_I_of_Germany_-_stained_glass_window.jpg▲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독일왕 루돌프 1세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

대공위 시대가 끝나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제국의 황제위를 차지했지만, 선제후들은 한 가문이 황제위를 독식하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세습을 허용하지 않고 계속 황제를 교체했다.


이에 합스부르크 백작, 나사우 백작, 룩셈부르크 백작, 비텔스바흐 백작 등이 돌아가면서 제위에 올랐고 어떤 가문도 3대 이상 장기적인 세습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각 가문은 꾸준히 제위를 상속하려는 시도를 이어갔고, 한 가문이 제위를 차지하는 주기도 길어졌다. 그 중에서도 룩셈부르크 가문은 제위 세습에 상당히 가깝게 다가간 가문이었다.


1356년 카를 4세가 반포한 금인칙서 역시 그 맥락이다. 


카를 4세는 금인칙서에서 황제를 선출할 권한이 있는 선제후를 4대 세속제후인 작센 공작,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팔츠 궁중백, 보헤미아왕에 3대 성직제후인 마인츠 대주교, 쾰른 대주교, 트리어 대주교를 더한 7명으로 확정하는데, 이 중에서 보헤미아왕위를 룩셈부르크 가문이 보유하고 있었다.


즉 카를 4세는 선제후 선거에서 항상 한 표를 안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도록 이 제도를 설계한 것이다. 


Goldene_Bulle_Handschrift.jpg▲ 1356년 금인칙서의 한 페이지

사실 금인칙서는 선제후를 7인으로 확정한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그건 각 선제후가 자신의 영지에서 왕과 동일한 권력과 자치권을 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금인칙서를 통해 선제후는 영지 내 완전한 재판권, 광산 채굴권, 화폐 주조권, 관세 징수권과 유대인 보호권을 갖게 되었는가 하면, 선제후 영지는 완벽한 장자 상속제로 분할 상속이 금지되었고, 선제후는 황제의 호출에 응하지 않고, 황제에 의해 소환되지 않을 권리를 갖게 되었으며, 선제후에 대한 반역은 대역죄로 처벌하게 되었다. 


결국 선제후는 제국 내에서 황제에게도 권력을 제한받지 않는, 영지 내에서 독립된 왕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는데, 결국 이게 다시 후대의 혼란을 초래한다. 


역사의 경로 의존성은 여기서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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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파드마
    • 금인칙서를 배웠습니다. ^^

      황제에게도 권력을 제한받지 않는,
      왕과 동일한 권력과 자치권을
      선제후가 가지게 되었으니

      혼란은 명약관화~!

      다음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 ^^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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