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역겹다. 당신들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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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겹다. 당신들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전적으로 자신의 죄에 대한 단죄 과정…이재명 포퓰리즘 정치를 동일시마라
기사입력 2018.11.26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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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그때도 그랬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 해다. 딱 1년이었다. 1년….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님께 가해지던 잔인하기 그지없었던 피의사실 공표와 정치 살인, 그리고 사법살인에 대하여, 그래서 끝끝내 역사의 제단 위에 자신을 내던진 대통령님의 서거에 대하여, 분노를 삭이기는커녕 그 피맺힘을 새겨가고 있었다.

그때 한겨레신문은 참 희한한 논조를 들이댄다. 

“DJ 유훈통치와 놈현 관장사를 넘어라”라고, 지들 딴에는 그것을 직설이라고 했다.

놈현 관장사를 넘어라.jpg▲ 2010년 6월 11일 한겨레 33면

한홍구, 서해성, 천정배가 씨부리던 잡설들이었다. 내용 자체도 볼 가치가 없는, 마치 고물같이 지지직거리던 고장 난 녹음기에 흘러나오는 저주의 굿판 비슷한 거다. 그것도 노무현 대통령님 1년 기일에 맞춰서… 그냥 그렇게 사람들 염장을 한 번씩 질러보는 식이였다.

그 패륜적 발상에 사람들이 분노하자 김선주라는 칼럼니스트는 “나는 ‘놈현’이라는 조롱이 듣기 좋았다”는 투로, 또 조롱질을 해가며 좀 교양 있게 비판의식을 갖자는 어투로 사람들을 또 훈계하고 계몽질을 했었다.

관장사 사과-한겨레.jpg▲ 그해 6월 11일 문제의 ‘직설’ 대담 기사가 나가고 나흘 뒤인 같은 달 15일 1면에 나간 한겨레의 사과문
 
김선주 옹호.jpg▲ 그리고 다시 2주 가량이 지난 후 오피니언 면에 나간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의 기명 칼럼

이쯤 하면 말이 안 통하는 거다.

나는 지금도 말한다. 당신들이 가해자다. 우리 모두가 천박한 그런 인식체계를 용인하던 정서에 대통령님은 스러졌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하자는 것이, 그래서 그런 언어도단에 분노하는 것이, 어찌 극렬한 전체주의 파시즘으로 둔갑되어야 하는가? 그래서 고작 싸고도는 것이 이재명의 패륜적 막말이며, 그의 아내 김혜경으로 추정되는 정의를 위하여의 트윗질인가?

누가 너희들 보고 같이 떠들어 달라고 했는가? 그런 낙인론에 찍히기 싫으면 그냥 빠져있으라고, 그래서 당신은 당신들의 중요한 관점에 따라서 글을 쓰라고, 어줍지 않은 정치 공학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의 주권의식을 욕하지 말라고…. 이해 안 가나? 

한겨레는 국민의 정부 때부터 이른바 ‘비판적 지지’를 하더니, 참여정부 때는 아주 저주를 내뿜으며 사실과는 무관하게 전혀 앞뒤에 맞지도 않는 신자유주의 프레임 노선을 뒤집어씌우며, 임기 내내 참여정부를 괴롭히고 조롱하고 고립시켰고, FTA 때는 아주 정점을 찍었었다.

그래서 그 FTA라는 개방으로 나라의 경제가 망했냐? 식민지라도 되었나? 지금에 와 볼 때 어느 경제학자가 그런 주장을 아직도 당당하게 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언론이 잘못된 사실과 잘못된 상식을 여과하여 독자들에게 잘못된 개념을 심어주는 그 사실들에 대한 사과도 없고 반성도 없다. 그래서 제일 약한 고리라고 생각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상징을 들쑤셔 이념 경쟁으로 언론 장사를 하고 싶었던 거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그 도그마 된 충돌 지점에 노무현 대통령님을 모독한 이재명과 혜경궁 김 씨가 메시아의 정치 쇼로 서있는 거다. 그래서 이건 애초부터 대충 뭉개고 넘어가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던 거다.

혜경궁 김씨.jpg

당신들이 말했잖는가? 이해찬 대표가 되면 분란이 정리되고 강철 같은 단결이 될 거라고… 지금 상황이 그런가?

혹자들은 말한다. 이재명 사건에 관심 같지 말고, 거악에 대항해 싸우라고….

아니, 이재명부터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시민주권적 가치의 정수가 존재할 수 없다. 참여하는 시민들이 지더라도 다시 좌절하더라도, 이 고착화된 상황을 어떻게든 타계하고 넘어가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아직도 이것을 모른다. 그래서 정무적 판단이 뭔지를 모른다. 언제까지 질질 끌고갈 건가? 그 판단의 시기는 그래서 어느 시점인가? 공판 들어가서 1심 나오고, 2심 나오고, 3심 나올 때인가? 대충 빨리 잡아도 그 시기가 1년이 넘는다. 그리고 총선이란 말이다.

소위 말하는 ‘좌 적폐’의 한겨레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님이 일구었던 참여정부의 치적을 다시 되돌아보고 대중들이 그 정치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배워가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런 민심이 그 자체로 피곤한 것이다. 스스로 정론적 상품을 만들어내고 경쟁해야 한다는 그 사실들이 귀찮은 것이다.

그래서 대중들 스스로 노무현의 가치를 품고 출발하는 친노매체의 대안언론의 성격 그 모든 것을 아직까지도 관장사, 심지어 더 나아가 혜경궁 김 씨의 저열한 시각처럼 ‘시체장사’라고 보는 거다.

그래서 나는 또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민주정부 정통성에 반하는 역적들이다. 당신들이 그 굽이쳐 흐르는 역사 속의 주권자들에 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 거다. 당신들이 노예고 당신들이 방관자다.

모든 영욕을 뒤안길로 하시고 봉하마을로 내려오신 노무현 대통령님의 소탈한 모습들이 그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밀려들어오는 민심들은 그때에서라야 노무현 대통령님의 진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대통령님은 그 밀려들어오는 시민들 한 복판 강단에 서서, 시민주권 민주주의에 대한 강연과 최고 권력자의 소탈한 소통들이, 당신 스스로 임기 내 이루어내지 못했던 고양된 시민주권 시대로 나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 과업을 진보의 미래라고 보셨던 것 같다.

대통령님은 친구분께 그런 말을 하셨다고 한다. 친구분께서 ‘왜 대통령이 되려고 그러느냐?’ 고 묻자, ‘정말 친한 이웃 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어서 그런다’라고. 

어찌 보면 그렇다. 그런 실체적 학습들이, 정말 손을 내밀면 가닿아 잡아볼 수 있는 존재가 대통령이라는 증거와 증표들이 우리에게는 정말 중요했던 학습이었다.

낮은 권력, 겸손한 권력, 많은 사람들에게 지배적으로 되풀이되는 특별한 선민의식이 아니라, 함께 대화하고 눈높이를 맞추는 권력. 그렇게 국민들에게 주인이라는 정신을 되돌려주는 권력.

그것이 87년 민주화 이후 실체적으로 구현되어야 했을 우리 사회 속에 필요한 공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이 노무현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성역이 아닌, 성역을 타파하는 존재, 그 자체였기 때문에, 노무현이라는 정신은 그런 상징으로 남았기 때문에….

노무현이라는 이름 앞에 권위주의와 서열주의는 그렇게 끊어졌다. 참여정부 초기 인사만 봐도 그런 모습들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검찰총장보다 11기 아래인 강금실 법무장관 기용은 그래서 더 파격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땠나? 정말 새파란 평검사들이 그런 문화를 받아들이던 태도는 어땠는가?

자문자답해봐야 할 시간이다. 우리는 그렇게 이 위기와 진통을 넘어 문재인 더불어 민주 정부를 성공시켜야 한다.

나는 그래서 시민과 함께 걷는 대통령을 꿈꿨던 노무현의 가치를 버릴 수가 없다. 내가 수없이 무너져도 그곳에 서있어야 한다. 진정한 노무현 대통령님의 복권이 그렇게 이루어져야 문재인 대통령님의 과업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그렇게 구태적 기회주의와 그 타성들로 모든 공세를 받아왔었다. 결국 민심도 돌아섰다. 정당은 전국정당의 가치를 포기했고, 지역주의 정당으로 회귀했다. 그 누구도 대통령님의 가치 철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대통령님이 할 수 있는 것은 시골의 촌부가 되어 그 모든 날것들의 열망들을 받아들여 녹여내고 다시 정치에 대한, 많은 대중들의 전체적인 주권의식 수준들을 끌어 올려가는 것만이 희망이라고 보셨던 거다.

그런 분을 끝끝내 우리 정치와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했다.

당신들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님께 가해졌던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들과, 그 진실 속의 가해성에 조금이라도 동조했던 당신네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지금 전적으로 자신이 저질러온 상당한 죄에 대하여 원칙과 상식으로 단죄를 받는 과정 속의 이재명 포퓰리즘의 정치를 비교하지도 말고 동일시하지 마라.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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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
  •  
  • 신영미
    • 잘 읽었습니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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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함진수
    • 신영미가슴에  와  당구장에서
    • 0
  •  
  • 푸나
    • 너무나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 1
  •  
  • 카라카라
    • 노무현대통령님이 그립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잊지않겠습니다.
    • 0
  •  
  • 파드마
    • '한겨레'라는 언론사에 실리는 '글'은
      사적인 공간에서
      어느 특정인을 향해 거칠 것 없이 직설적으로 내뱉는 '말'이 아니죠.

      한홍구, 서해성 두 사람도
      아버지의 사적인 호칭을 예로 든 김선주씨도
      '독자'라는  존재를 무시했네요.

      특히 김선주씨, 참 오만합니다. ㅎ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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