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투쟁적 고등학생, 대학의 투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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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적 고등학생, 대학의 투쟁을 만나다

대학에서 본 민주주의 ① 프롤로그
기사입력 2018.11.0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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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은 보수적인 도시였다. 보수적이다 못해, 진보는 사멸한 것만 같은 분위기마저 풍겼다. 그곳에서 초, 중, 고를 모두 나왔다.

교장과 교감을 위시한 학교의 위정자들은 항상 무사안일을 기원하며 학생들이 지역사회 분위기에 돌출되는 행동을 하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가져온 반골기질은 결코 그 세태에 순종하지 말 것을 명했다. 주변이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일수록 진보적으로 행동하고 위계에도 복종하지 않으려 했다. 자연히 약자의 권리나 그를 실현할 수단으로서의 ‘투쟁’에 침잠했다.

지적 수준이 한없이 미진한 탓에 논리를 제대로 씹어 삼킬 수는 없었지만, 마르크스를 읽고 레닌을 읽었다. 사회주의 투쟁사나 자본론 해설서로 미약하나마 이해를 더했다.

세상은 프롤레타리아가 끊임없이 투쟁해 ‘인민의 지배’를 실현해야 할 장으로만 보였다. 그게 또 나름의 정체성으로 굳어져서, 그 중요한 생활기록부에도 “투쟁을 탐구했다”는 문구가 자랑스레 새겨졌다.

2017년 3월,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3월 11일,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서울대 시흥캠퍼스 실시협약(이하 시흥캠) 철회 투쟁을 벌이던 학생들에게 ‘학교가 물대포를 쏘았다’는 것이었다.

서울대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본부 점거.jpg

시흥캠 철회를 위해 행정관을 153일째 점거하고 있던 학생들을 학교 측에서 무력으로 해산시켰다. 당시엔 이미 새내기배움터와 신입생세미나 등의 자리에서 대학의 공공성, 약자의 투쟁에 관해 수도 없이 설파당한 뒤 호기와 열정에 휩싸여있었다.

교육의 요람이 되어야 할 학교에서 어찌 학생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느냐고 분개했다. 학교의 만행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글도 썼다.

짧게나마 한평생 가져온 반골기질, 한국의 민주투사들에 대한 열렬한 존경, 사회주의 운동가들에 대한 맹목적 선망이 어우러져 투쟁의 길에 빠져드는 듯했다.

2017년 4월 4일, 대학본부(행정관) 바로 앞 아크로폴리스에 2000명이 훨씬 넘는 학생이 총회에 운집했다. 시흥캠 철회 투쟁에 관련된 세 가지 안건을 의결하는 자리였다.

첫 번째는 ‘성낙인 서울대학교 총장 탄핵의 건’이었다(실제 명칭은 다를 수 있음). 수천 명 중 단 4명만이 반대에 표를 던졌다. 의사결정 과정에 학생들을 철저히 배제한 총장을 학생들은 단호히 거부했다.

두 번째는 ‘시흥캠 철회 투쟁 기조 유지의 건’이었고, 세 번째는 ‘투쟁 방식 선택의 건’이었다. 

두 번째 안건은 약 50%를 조금 넘는 찬성률로 통과되었고, 세 번째 안건은 행정관 점거농성, 무기한 천막투쟁, 동맹휴업의 세 안이 모두 과반의 선택을 받지 못해 부결되었다.

결국 투쟁 기조가 유지되기는 했지만 4월 4일의 총회는 그동안의 투쟁이 ‘대분열’을 일으켰음을 보여주었다.

대분열은 투쟁 중에 이미 예정되어있었다.

사진7-성낙인-서울대-총장.jpg▲ 2017년 12월 7일 시흥시와 서울대학교, (주)한라가 함께 배곧신도시 내 현장에서 개최한 ‘서울대 시흥 스마트캠퍼스 선포식’에서 발언하는 성낙인 서울대 총장.

사태는 입학 전인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8월 22일, 서울대와 시흥시는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조성을 위해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학교 측에서 그 의사결정 과정을 의도적으로 은폐하여 학생을 배제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2016년 10월 10일, 2017년 4월 4일의 총회처럼 전체 학생총회가 소집되었다.

1980명이 참여해 총회가 성사되었고, 그중 74.9%라는 압도적 다수가 시흥캠 철회 투쟁에 찬성했다. 대(對)학교 투쟁이 개시되면서 동시에 그 방식으로는 행정관 점거가 채택되었다.

총회 직후 밤 10시, 400여명의 학생들은 행정관의 문을 따고 들어가 총장실 등에서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수개월 간 농성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시흥캠퍼스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학내 노선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한쪽은 소위 ‘운동권’을 주축으로 시흥캠퍼스 설립 계획 자체를 무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이었다.

이들은 시흥캠퍼스 자체가 평생교육원을 설립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었기에 ‘대학 공공성’의 가치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애초에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으로 출범한 사업이므로 시흥캠퍼스 설립 계획 자체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쪽은 소위 ‘비권’을 위시하여 시흥캠퍼스 설립을 지속하는 대신 그 청사진을 그리는 데에 학생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입장이었다.

이들은 관악캠퍼스 전체가 이제는 그린벨트로 지정되어 추가 개발은 불가능한 데 반해 이공계열에서는 우주항공이나 4차산업혁명을 대비해 연구시설을 확충해야 하며, 서울대가 여타 국립대학과는 달리 자율성을 높이겠다며 ‘국립대학법인’으로 지위가 변경된 이상 등록금을 대폭 인상하지 않으려면 수익 사업을 벌이는 것 또한 불가피하다고 일갈했다.

초창기에는 압도적으로 투쟁노선의 입장이 지지를 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타협노선이 세를 끌어왔다.

2016년 10월과 2017년 4월, 반년이라는 간격을 두고 두 번의 총회가 개최되었다. 상반된 투표 결과가 그 경향을 말해준다. 16년 10월 총회에서는 74%가 시흥캠 철회를 주장한 반면, 17년 4월 총회에서는 56%만이 철회 기조를 유지하자고 했다.

입학 직후, 투쟁에 목말라있던 한 ‘예비운동가’도 단 한 달 사이에 반(反) 투쟁으로 돌아섰다.

두 입장 중 어느 것이 옳은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중요한 것은 학우들이 급격히 돌아선 원인이다. 강경 투쟁 노선으로부터 온건 합의 노선으로의 대이동은 왜 일어날 것일까?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그리고 여러 후속 사안을 둘러싸고 학내민주주의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그리고 그것을 민주주의의 어떤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학생들에게는 그것이 어떻게 다가왔을까?

투쟁적 고등학생이 경험한 진짜 투쟁을 바탕으로 민주주의의 여러 속성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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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  
  • 프롤릭스
    • 흥미진진하네요^^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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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율사랑
    • 생동감 있게 잘 쓰셨네요. 다음회가 기다려집니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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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시안
    • 재밌고 흥미롭게 잘 썼네요
      다음편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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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
    •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는 축소판이네요. 유태인식 몇 시간이고 다 모인 상태에서 공개토론 통해 합의점 찾아내는 것도 대학에서 실시해 보는 것도 좋은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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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파드마
    • 노진탁 기자님 '두 번째 글'에도 답글 썼지만
      대학생 기자님들, 언제 오시나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 시리즈.
      자신의 경험에 따른 고민과 성찰의 글
      긴 호흡으로 글쓴이와 함께 해야하는 글
      너무 좋습니다. ^^

      =====

      지난 번, '집단지향의 개인주의' 용어를 언급하셨죠.
      그동안 제가 뚫지 못한 어떤 것이 팍~ 뚫렸습니다.
      아...그래...이 용어를 이끌어내지 못했어...그랬어,
      너무 고맙습니다. ^^

      마이클 샌델 교수 [정의란 무엇인가], 들어보셨지요.
      처음 오렌지색 표지 / 새 번역판 까만색 표지
      이렇게 두 권이 나왔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좋은 삶'을 강조하셨지만 선뜻 수긍되지 않았어요.
      대한민국은 미국과 달리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나라.
      '군사독재에 투쟁함 = 옳음'이란 운동권 마인드를 떨쳐내지 못한 세대가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나라.

      미국과 대한민국의 역사의 흐름이 다르더라도
      새겨볼 게 많았습니다. 거듭거듭 읽었습니다.

      새 번역판 까만색 표지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감수자 숭실대학교 김선욱 교수님의 해제가 실려있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를 김선욱님은 '자유的  공동체주의자'라고 했어요.
      이 용어에서 힘들었던 하나가 확~ 뚫렸어요.

      권기자님의 '집단지향적 개인주의'와 마이클 샌델의 '자유적 공동체주의'는
      손등과 손바닥처럼
      제 자신에게 공존하고 있는 두 가지 성향의 갈등을 또한 일러주었습니다.

      =====

      논리적 사고에 대한 훈련이 없는 제가
      어느 날
      '논리적 사고에 담긴 건강한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전문교양도서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권기자님, 짐작하셨지요??
      네...지금 제가 '논리적 사고'를 실생활에 활용해야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힘들고 힘들지만...해 볼 만합니다. (홧팅~ ㅋㅋ))

      뉴비씨 칼럼에서 도움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 합니다.
      권기자님, 뉴비씨와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입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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