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신라에 대한 비난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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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대한 비난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국가에 대한 의무·책임 지킨 지도층, 외교정책 통해 평화 추구
기사입력 2018.11.0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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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단어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인데, 공주 신분이면서 2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한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귀족 자제들이 주로 가던 이튼칼리지 학생들이 제1차 세계대전에 5619명이 참전해 1157명이 전사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4690명이 참전해서 748명이 전사했을 정도라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elizabeth-windsor11.jpg▲ 스무살이었던 1945년 입대한 엘리자베스 공주는 ‘엘리자베스 윈저 소위’로 불리며 군용 트럭을 모는 운전사로 복무했다.

800px-Elizabeth_II_in_Berlin_2015.JPG▲ 이 분 맞다.

이튼 칼리지.jpg▲ 이튼칼리지의 1차 세계대전 100주년 기념행사.

아마도, 사회 지도층일수록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 대한민국의 현 시대적 상황 그리고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고려의 몽골 침입, 임진왜란, 한국전쟁 등 국가지도층은 잽싸게 도망가 버린 나라를 항상 일반 백성이 지켜왔던 역사적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 속에도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한 사회지도층의 책임이 강조되는 국가와 시대가 분명히 존재했다. 바로 신라이다.

하지만 신라는 일제강점기와 치열했던 빈곤국의 시대를 거치며, 암울한 상황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강조되었던 ‘민족주의 사관’의 영향으로 인해 ‘불완전한 통일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반인들에게는 무시당하거나 경원시되고 만다.

흔히 사극을 비롯한 매체에서부터 일반적인 대화에서까지 ‘외세의 힘을 끌어들인 통일이었다’는 이유로, 아니면 ‘거대한 고구려의 영토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비아냥이나 매도당하는 것이 신라에 대한 일반적인 국민들의 인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라라는 나라의 삼국통일 과정과 그 시초를 끊은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행적은 그렇게 일방적인 비난을 받을 만큼 가볍지 않았다.

우선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자.

진흥왕 시기 한강 유역을 차지한 이후, 신라는 외교적 고립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특히 선덕여왕 대에 이르러서는 백제-고구려-왜 삼각 동맹의 동시다발적인 공격으로 인해 국가의 존망의 기로까지 몰렸으며, 가장 핵심 요충지였던 대야성까지 잃고 만다.

그 상황에서 신라의 명운을 건 외교를 위해 대표로 나섰던 건 바로 당시 권력 순위 2위, 차세대 권력 순위 1위였던 김춘추였다.

선덕여왕 42회 10.13.화(고현정,이요원,김남길).jpg▲ 김춘추는 혈통이나 왕실 내의 위치로 볼 때 유일한, 그리고 가장 유력한 남자 왕위계승권자였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한 장면

처음부터 신라가 당나라와의 동맹을 고려했던 것은 아니었다. 김춘추는 먼저 고구려와의 동맹을 위해 고구려를 방문했으나, 연개소문은 그를 옥에 가두어버린다.

결국, 억류된 김춘추를 구하고자 김유신의 결사대가 진격을 결정한 상황이 되어서야 김춘추는 간신히 풀려나고 만다.

그리고 김춘추는 서해를 건너 머나먼 당나라행을 결정했다.

물론, 결과론적으로는 당과의 이야기가 잘 진행되어 나당 동맹이 체결되었으나 실제 그 외교적 환경은 녹록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화정권과 사이가 가장 좋았던 건 삼국 중에 백제였기 때문이다.

김춘추 선덕여왕.jpg▲ 김춘추의 외교 행보는 나라의 명운을 지키기 위한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무령왕릉을 비롯한 다양한 역사 유적에서 중국과의 문화적 교류의 흔적이 가득 나타날 만큼 백제는 중화의 왕조들과 밀접한 관계를 수백 년간 가져왔고, 그러한 백제 사신의 주 업무 중 하나가 고구려를 공격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신라의 나당동맹을 욕하는 사람 중에 누구도 그러한 백제의 행태에 대해 비난을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는 점이 참 역설적이지 않을까?

그러한 당과 백제의 밀접한 관계는 김춘추의 당나라행이 큰 도박이었음을 증명한다.

나당동맹이 체결된 이후에도 당은 상습적으로 사신을 인질 삼아 억류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신라의 최고 권력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국가를 위해 먼 길을 나선다.

돌아오는 귀향길에서도 서해는 김춘추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고구려와 백제의 수군들 견제와 감시를 간신히 떨쳐내고 귀환하는 과정의 고단함이야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김춘추는 짊어졌다. 단지, 국가의 명운을 위해서.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 태종 무열왕 김춘추.jpg▲ 김춘추(태종 무열왕)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KBS 드라마 ‘대왕의 꿈’

그 이후의 삼국통일 과정을 지켜보자. 흔히들 한국형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진 화랑 관창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고, 그 외의 많은 화랑이 전쟁 중에 전사하였다.

또한, 당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었던 김유신의 경우 역시 신라가 얼마나 사회지도층의 의무를 중시하였는지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흔히, 교과서에서 있었던 ‘원술랑’이라는 희곡으로 알려진 김원술의 경우를 보자, 병역회피도 아니고 단지 불리한 상황에서 후퇴하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원술은 집안에서 제명을 당한다.

심지어는 큰 공을 세운 후 왕이 용서해주라는 명까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김유신과 지소 부인은 용서하지 않았다. 결국 김원술은 다시 적진에 나가 싸우다가 전사한다.

김유신-원술랑.jpg

한민족의 역사에서 이만큼 엄격히 사회지도층의 의무에 대해 강조한 경우가 과연 이 시기에 신라 외에 언제 있었을까?

몽골군에 학살당하던 민중을 버리고 강화도로 도망친 무신정권? 언제든지 명나라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임진왜란의 선조? 북한군이 아직 도착도 안 했는데 피난민들이 있는 상태에 한강철교를 폭파한 이승만 정권?

그리고 최종적으로 전란을 마무리한 문무대왕은 왕들의 그 흔한 화려한 왕릉에 대한 욕심마저 버리고,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의로 동해의 바위를 무덤으로 선택하였다.

문무대왕 수중릉.JPG
 
문무대왕릉.jpg▲ 문무대왕릉(文武大王陵)은 신라 문무왕의 해중왕릉(海中王陵)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다. 1967년 7월 2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다음으로, 흔히들 신라를 사람들이 비난하는 이유 중 하나인 고구려의 멸망을 생각해보자.

단순히 고구려를 멸망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만주의 영토를 상실했음에 대한 비난인 경우가 많은데, 상식적으로 볼 때 이러한 생각은 고구려의 영토를 제대로 승계한 우리 역사 중 하나인 발해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선, 만주 영토 상실은 신라 이후의 고려나 조선의 몫에 가까우며, 발해와 신라의 멸망 시기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해본다면 신라의 책임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고구려가 통일했다고 가정하더라도 필자의 생각으로는 만주의 영토를 우리 민족의 강역으로 유지했을 확률은 극히 낮다.

지금이야 농업기술의 발달로 만주지역에서도 활발히 농사가 진행되나 실제로 만주지역에서 벼농사가 가능해진 건 조선 후기에 와서야 가능했으며 그러한 한계로 인해 만주지역은 농경민족보다는 유목민족의 터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국의 한족 역시 만주를 자신들의 강역으로 확보한 건, 중화인민공화국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이후에 불과하였고, 심지어는 그 역시 한국전쟁의 패배를 막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까닭에 무산되기는 했으나, 그 이전에는 소련의 압력에 의해 북한이랑 소련에 분리되어 강제로 양도를 당할 상황도 오기도 했다.

대조영.jpg▲ ‘만주 영토’ 상실이란 소리는 고구려 영토를 제대로 승계한 발해를 무시하는 행위. 위의 누군가와 닮아 보이는 것은 기분 탓입니다.

결국, 만주 지역의 실질적 지배자는 유목민족들이었으며, 현실적으로 송나라를 압박한 요나라, 금나라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성기 세계를 지배했던 원나라의 몽골 기병으로부터 만주를 지켜냈으리라는 생각은 민족적 자부심이 지나친 오만에 불과하다고 본다.

또한, 거대한 영토가 강한 국력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너무나 많은 사례가 있으며, 영토 크기가 국력을 보장한다면 실제로 민족적 문화적 특성 등, 고구려가 지속해서 살아남았을 때의 차지했을 위치랑 비슷한 입장인 몽골이 지금 우리보다 더 국력이 강해야 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또한, 고구려가 살아남아 민족의 위대한 터전을 유지했으리라 가정하더라도 고구려의 멸망 역시 신라의 책임은 없다고 봄이 무방하다.

신라는 백제와는 달리 고구려의 침략에는 일종의 태업을 시도하였는데, 진군하다가 춥다고 철수하고 군량 정도나 전달하는 구색 맞추기만 했을 뿐이었다.

오히려 백제에 잔류한 당 세력의 축출에 훨씬 더 큰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가 멸망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지도층의 권력투쟁이 극심해지어 나라까지 팔아먹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자식 농사를 엉망으로 지은 연개소문의 책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김춘추-김유신 콤비와 대조되는 모습에서 신라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유를 알 것이다.

연개소문.jpg▲ 자식농사를 엉망으로 지은 책임이랍니다. 일단 그 주먹 푸시고요...

셋째로, 중국에 굴종하였다는 이유로 비굴하다는 취급을 받는 신라의 나당전쟁의 자주성과 위대함은 살수 대첩과 안시성 전투보다 전혀 부족하지 않다.

우선 침략전쟁을 방어할 때의 궁극적인 목표는 다시는 그러한 침략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위해 상대에게 회복할 수 없는 철저한 패배를 입혀 멸망시켜버리거나(예 : 살수대첩), 더 침략할 의지를 상실하게 만들거나(예 : 한산도 대첩, 명량해전)하는 방법이 있다.

그중에서도 신라는 강역을 침범한 당군을 적극적으로 구축한 후, 세련된 외교적 방법을 통해 그 후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당으로부터의 침략을 당하지 않는다.

결국 일시적으로 승리를 했으나 지루한 소모전이 지속하여 국가의 멸망을 전혀 늦추지 못했던 안시성 전투보다 나당전쟁은 훨씬 더 의미가 큰 행위였다.

또한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차근차근 방어선을 통해 막아낼 수 있었던 고구려의 상황과 달리, 신라는 이미 방어선 내부인 구백제 영토에 당군이 존재하였으며, 그러한 당군을 구축해내어야 했다는 점은 나당전쟁이 매우 쉽지 않은 전쟁이었음을 증명한다.

당과의 전쟁 과정에서 통일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들을 최대한 단합시켜 활용하는 정치적인 역량은 지역감정을 악용하여 정권 유지에 급급했던 대한민국의 독재정권과 비교되어 더욱더 빛이 나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해본다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신라에 대한 비난은 매우 지나치다고 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분단의 상황과 강소국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를 확보해야 하는 현재 대한민국이 과거의 역사에서 본보기로 삼아야 하는 것은 다른 어느 나라도 아니고, 신라여야 된다고 본다.

우선, 신라의 사회지도층은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며, 나라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 어떠한 일도 감내해 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철저한 외교정책을 통해 평화를 추구해나갔다.

그런데도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유럽국가들과 달리 단순히 외교적으로의 해결만 고민한 것이 아니라 외교를 통해 확보한 시간을 통해 증가시킨 국력으로 외침을 적극적으로 막아내어 침략 의지 자체를 말살시킨 부분은 잊지 말아야 할 요소이다.

외교의 가장 큰 목적은 국가나 외교관의 자존심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과 생존에 그 뜻이 있기 때문이다.

origin_베이징서민식당서아침식사하는문대통령내외.jpg▲ 2017년 12월,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중국 베이징 조어대 인근의 한 현지식당에서 중국 서민들의 대표적 아침식사인 유탸오와 더우장(중국식 두유)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모습. 중국 인민들에게 다가가기위한 이런 노력을 한국 언론들은 ‘혼밥’이라고 비하했다.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핵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던 나라가, 국가지도자의 끊임없는 자존심 따위는 훨훨 던져버린 헌신과 노력으로 평화를 구축해나가는 기적을 우리는 최근 목격하고 있다.

김춘추의 나당동맹을 폄훼하듯 언론들은 그러한 노력을 끊임없이 비웃고 홀대론 따위를 운운하며 폄훼하기 급급했다.

10여 년 전에는 어떠했나.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한미 FTA를 추진했으며, 전 세계를 떠돌며 홍보하여 UN사무총장을 자국민이 당선 시킨 국가지도자에게 국민들과 언론이 쏟아 부었던 그 많은 비난 들은 막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국가의 명운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 세계를 누볐던 천오백여 년 전의 한 지도자를 재조명하여야 하며, 현재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참 많은 것을 감내해 내어야 했던 두 대통령의 노고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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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CYNON
    • 갑자기 왠 신라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고 보다가 알차고 깊은 내용에 푹 빠졌는데, 마무리까지 참 좋은 기사네요. 잘 읽었습니다!
    • 1
  •  
  • 파드마
    • 박현진 기자님, 안녕하세요. ^^

      팟빵 뉴비씨 시즌2 이후, 뉴비씨 기사에 댓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를 클릭하니 2017년 12월 1일, 첫 기사가 있네요.
      (찬찬히 정독하겠습니다.)

      '민족주의 사관...외세에 의한 통일, 불완전한 통일'이란 이유로
      신라를 비난하다..

      제가 생각했던 통일신라가 비난받는 이유는??
      1) 박정희 정권의 '지역주의'
      신라 서라벌(경주)와 박정희 구미가 모두 경상북도.
      신라 (경상도) vs 백제 (전라도)
      2) 역사적 현실 '남북분단'
      고구려와 발해는 책 속에 갇혀버린 '박제된 과거'.

      그럼에도 저는 통일신라를 비난하기보다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여겼었어요.
      이런 저에게 기자님의 해석은 '통일'이라는 관점을 화들짝 일깨워주십니다.

      2018년 지금
      '노블레스 오블리주, 외교, 국익'에 초점을 맞춰
      역사적 과거 - 7세기경 통일신라와
      역사적 미래 - 21세기경 한반도 평화통일을
      통시적으로 엮으셨어요.

      1400여년이라는 시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역사적 인물 - 김유신, 김춘추(태종무열왕), 김법민(문무왕)
      현재의 역사적 인물 - 노무현 대통령님, 문재인대통령님
      국가적 지도자가  함께 만납니다.

      문득,
      3면은 바다로 둘러싸이고 나머지 1면은 대륙과 맞닿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통일신라'가
      세계사에서 숱하게 맞닥뜨리는  '~ 제국'과 같은 '통일신라제국'이 아니었음이 오히려 
      '통일신라'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

      좋은 글, 고맙습니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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