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생활의 발견] ‘자기만의 방’을 나올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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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자기만의 방’을 나올 시간

“선생님은 왜 자기 일도 아닌데 그런 일에 관심이 많아요?”
기사입력 2018.10.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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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을 나올 시간
-당사자성을 넘어서 

오늘 글은 평소와 달리 경어체로 써볼까 합니다. 오늘 할 이야기는 이처럼 저를 조심스럽게 합니다. 그 조심스러운 마음과 마음속에 있는 진정성을 표현할 궁색한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 아쉽습니다.

제목에 언급한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입니다. 이어지는 내용과 상관없이 좋은 작품입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바라본 당대 여성의 삶과 문학에 드러난 가부장제의 억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여성을 수단이나 소재로 한 글들은 많지만 여성에 대한 직시와 연구, 그리고 가부장제의 억압을 다룬 글들은 대중적인 차원에서는 많이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 있습니다.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부제로 달아놓은 ‘당사자성’과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다 자신이 없어서 몇 번이나 쓰고 지웠습니다. 그래서 거창하게 쓰지 말고 아는 범위 내에서 느낀 것들을 진솔하게 써보면 어떨까 해서 이렇게 적게 되었습니다.

긴 글이 지루할 분들을 위해서 결론부터 얘기하면 “당사자성은 우리가 언젠가는 나와야 할 자기만의 방”이라는 생각입니다.

자기만의 방.jpg▲ 『자기만의 방』을 국내 출판한 민음사는 “20세기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인 버지니아 울프가 가부장제와 성적 불평등에 맞서 여성 문학의 가능성을 모색한 페미니즘의 정전”이라고 책을 소개하고 있다.

1. 어떤 당사자성 A

여러 사회 운동에서 ‘당사자성’을 강조하며 타인들을 배척하는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 운동이 ‘개인의 억눌린 정념의 표출’이나 ‘자기 정화의 수단’이라면 자체로 충분하지만, 확장성을 지향하여 궁극적으로 사회가 달라지길 원한다면 ‘효과’가 없을뿐더러 ‘해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라는 것을 개인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위력이 있는 것이라 전제하고, 그것을 변화시켜야한다고 믿는다면, “당사자가 아니니 끼어들지 말고, 말하지 말라”는 것은 모순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가해자나 가해 집단, 억압의 주체들이 운동의 방향이나 방법에 대해서 가르치듯 떠드는 것은 역겹고 분통터지는 일입니다. 여성 문제에서 나타나는 ‘맨스플레인’이나 청년 문제에 대해 기득권 세대가 “요즘 것들은” 하면서 주워섬기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 상황에 대해선 당연히 맞서고 대항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사자성이 지나치게 과잉되어 아예 모든 타자에 대해서 입을 막는 행위는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말하고자 할 때 저는 이런 것을 고민하며 오랫동안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저 당사자성을 지닌 집단에서 자성적인 반응과 확장성에 대한 고민들을 얘기하는 모습이 종종 보일 때마다 기쁘고 고마웠을 따름입니다.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다가 이렇게 지면을 빌어 얘기를 하게 된 것은 얼마 전의 경험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제2의 성.jpg▲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제2의 성』은 남성 사회의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기보다 육체화하고 있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인간으로서의 주체를 회복하는 해방의 길을 찾아가는 데 하나의 커다란 지렛대를 제공해 ‘현대 여성주의의 초석’으로 평가되고 있다.

2. 어떤 당사자성 B

고2 고전 과목에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고전 문학 수업을 하다 보면 거의 대부분이 조선조의 작품들이고, 어쩔 수 없이 남성중심적인 문학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컨대, 충신연주지사의 개념을 설명하자면 “군신간의 상하관계에서 하급자인 신하의 변함없는 충성심을 남녀 간의 사랑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변함없이 사랑을 주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일들 말입니다.

물론 항상 “지금은 절대 통용되지도 않고, 통용되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만 이래저래 불편한 일입니다.

그런 와중에 『제2의 성』과 같은 텍스트를 수업할 때면 정말 신이 납니다. 

수업 도중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편견에 대해서 얘기하다 동성애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마 제가 “우리에겐 누구의 존재를 찬성하거나 반대할 권리가 없으며 우리의 호오나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얘기했던 때였습니다.

한 남학생이 한 말입니다.

“선생님, 동성애자예요?”

평소에 예의가 없거나, 아예 인성이 덜 된 학생이었다면 차라리 체념했겠지만 전혀 그런 학생이 아니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모범적인 축에 속하는 학생이었어요.

정말 머리가 어지럽고, 제가 저의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발끝부터 머리까지 새빨개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수업을 계속해야 하므로 전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선생님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선생님은 그런 일에 관심이 많아요?”

수업이 끝나고 학생을 불러서 얘기했습니다. ‘세상에 나의 일, 내가 당사자인 일들은 얼마나 되냐’고 물었습니다.

‘너는 인터넷 포털을 열어서 너와 상관없는 연예 기사에 댓글을 달고, 네가 뛰지 않는 축구팀 기사에 댓글을 달고, 무엇보다 너와 상관없는 대학교 견학도 가지 않느냐’고 말이죠.

‘지금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고 나름대로 사람답게 살고 있는(사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여전히 이 한국 사회가 지옥 같은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유는 너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일이 아닌 일에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학생을 달래고 돌려보낸 뒤에 혼자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조그만 땅덩어리인 한국 사회에서도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어서 당사자성이 있는 문제가 몇 개나 될까. 그렇다면 당사자성이 없는 일들에는 침묵하는 것이 미덕인 것인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잡이로 떠드는 만용과 무례는 없어야겠지만 그래도 아는 수준에서 이야기하는 신중함과 틀리면 틀린 것을 수용하는 겸허함을 지닌 상태로 나와 상관없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얘기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결론에 닿게 된 것입니다.

love is love.png

3. 더 많은 말들과 더 적은 편견으로

사실 저는(저를 잘 아는 분들이 많겠지만)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도 아니고, 깨끗한 사람도 아닙니다. 남중, 남고, 군대라고 하는 곳에서 유년과 젊음을 보내면서 자의로든 타의로든 혐오와 추태와 못된 짓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을 더욱 망설였는지도 모릅니다.

나 까짓 것이 뭐라고, 나한테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래서 누구한테 이 글은 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넓은 의미에선 소망입니다.

나의 일이 아닌 일에도, 당사자성을 넘어서 더 많은 말들과 담론과 긍정적인 변화가 세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마찰과 갈등을 낳을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더 적은 편견으로 가는 통로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격지심과 자기검열로 나의 일이 아닌 모든 일에 모두가 침묵하는 조용한 세상보다는 부딪히고 다치면서도 조금씩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믿습니다.

날씨가 점점 더 스산해지면서 가을을 밀어내고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모두 몸과 마음이 건강하시길 멀리서나마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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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
  •  
  • 올리비아
    •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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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드마
    • 기자님께서 언급하신 '고2 학생'의 지적 수준이
      우리의 삶이 '관계'를 맺으며, '관계 속에서' 살아감을 모르는 바 아닐 듯.
      '관계의 대상'에 대해 물리적인 거리, 심리적인 거리 들이 다름을 모르는 바 아닐 듯.

      소설적 상상력이 움찔거립니다.
      혹, 그 학생이 '자기만의 방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내밀히 고민하는 걸 아닐까??
      혹, 그 학생이 따뜻한 가을볕을 밀어내는 스산한 겨울바람이  두려워
      기자님께 손을 내밀었던 건 아닐까??
      네....소설적 상상입니다.

      여운이 깊게 밀려오는 글, 잘 읽었습니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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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우러기
    • 사회구조나 내력있는 풍속에 의해 발생하는 억압이 늘 집단간의 대립을 격화시키며 많은 증오를 축적하고 있는데 이를 완화하고 좀더 효과적안 방법으로 화해와 공존의 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필자의 고민과 그 결과물에 박수를 보내며 대부분 동의합니다.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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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장지구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당사자성을 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댓글만~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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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 선생님일도 아닌데 왜 관심이 많냐는 그 학생은 선생님이 너는 왜 네 일도 아닌 연예계 기사에 댓글쓰냐고 하실때 마응 속으론 제가 좋아서. 관심있어서 댓글쓴다고 했을겁니다. 어떤 변명. 선의. 당위를 갖고 말한다해도 내심은 사람은 다 자기가 관심있는것에 반응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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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병욱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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