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논평] 어떤 숭고한 전쟁도 썩어 문드러진 평화보다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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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어떤 숭고한 전쟁도 썩어 문드러진 평화보다 못하다

북미 비핵화 정상회담과 핵의 정치학…‘숨겨둔 핵은 핵이 아니다’
기사입력 2018.06.0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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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_싱가포르한인회사무실앞북미회담성공기원포스터 (1).jpg▲ 싱가포르 한인회가 7일 6·12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포스터를 '리틀 코리아 타운'인 탄종파가(Tanjong Pagar) 지역 사무실 앞에 붙였다. 싱가포르 한인회는 홍보 활동을 지속하면서 정상회담 당일에는 교민들과 생중계 방송을 본다.
 
비핵화야 말로 이번 정상회담의 최고 아젠다


역사적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나흘 앞으로 다가 왔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일단 회담이 열리게 됐다는 점에서 전망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7일, 지난 68년간 적대관계를 형성했던 북미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북한의 국가적 숙원 과제인 북미수교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북한이 희망하는 체제 안전보장의 핵심적 조치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현재 정상회담 합의문을 둘러싼 북미 간 실무협상에도 매우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첫 단계로서 종전 합의에 서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시작이다. 그것은 아마 쉬운 시작이고, 어려운 부분은 남아있게 된다”고 말했다. 종전 선언의 실질적 효과를 위해서는 핵심 목표인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렇다. 비핵화 문제야 말로 이번 정상회담의 시작이자 끝이다. 


“북한이 핵포기 선언을 하고도 비핵화를 약속 하고도 핵무기를 감춰두면 어떻게 하나. 어떻게 믿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그때마다 필자는 “숨겨둔 핵무기는 더 이상 핵무기가 아니다”라는 한마디 말로 대답을 대신하곤 한다. 


핵문제에 있어서는 핵포기 선언, 비핵화 약속이 중요하다. 이 경우 선언과 약속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마련이다. 물론 욕심을 부려 몇 개 숨겨두면 찾긴 어렵겠지만, 억제력과 과시력 이라는 핵 무장의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 핵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나중에 그것을 그걸 다시 꺼내 들어 ‘우리 이렇게 몰래 몇 개 숨겨뒀거든’하고 흔드는 경우, 오히려 김정은이 훨씬 더 위험해지게 된다. 그때는 미국과 중국을 분노케 해 정밀타격이거 대규모 폭격이건 응징의 확실한 명분을 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그처럼 어리석지는 않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숨겨뒀다 그게 발각될 경우 감수해야 할 위험은 너무도 크다.


한마디 덧붙이면,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회담에서 힘차게 들어야 할 전가의 보도가 바로 이 ‘숨겨진 핵은 핵이 아니다’라는 논리다. 이를 그대로 뒤집어 ‘내가 바보냐 그런 위험을 감수하게?’라고 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출발해서 완벽한 검증이라는 불합리의 극치인 덫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의심을 풀지 않은 사이의 검증이란 우리가 박원순시장 아들의 병역 문제, 래퍼 타블로의 학력 문제에서 보고 있듯이 뭐래도 믿지 않으려 들으면 한도 끝도 없는 진흙탕이다.


origin_북미회담성공기원포스터붙이는싱가포르한인회.jpg▲ 싱가포르 한인회 직원이 7일 6·12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포스터를 '리틀 코리아 타운'인 탄종파가(Tanjong Pagar) 지역 사무실 앞에 붙이고 있다.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위협이 되는 핵


현실적으로 한반도에 위협이 되는 핵은 북핵도 북핵이지만 미국의 핵 역시 위협이다. 혹시 한반도에 핵이 터진다면 북핵보다는 미핵이 터질 공산이 크지 않은가.


사실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문제로 삼자면 미국의 핵이 더 문제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핵을 무기삼아 국제 전략을 펴 왔다. 지구상에서 실제 핵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나라 역시 미국이 유일하다.


선제 핵공격 위협을 통해 상대를 위협함으로써 자국에 유리한 조건의 협상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한 전례도 많다.


1946년 3월 북부 이란 주둔 소련군 철수를 강요했을 때, 1961년 베를린 위기 때,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등이 그랬다. 또 1991년 걸프전 당시에도 미국은 이라크 주변에 핵무기 수백 기를 배치해 이라크의 화학무기 사용을 저지했다.


1970년대 소련의 핵전력이 미국과 어느 정도 대등해진 이후 비로소 ‘억제’가 등장한다.


미국의 정치, 군사지도자들이 생각하는 ‘억제’란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억제와 그 의미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억제란 핵전쟁의 무서움 때문에 서로 핵을 자제한다는 논리로 미국에 대한 타국의 선제 핵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펜타곤 지도자들에 따르면 억제란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은 지난 70여 년간 핵무기의 위력을 앞세워 세계에 자신들의 요구를 강요해 왔고 타국이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해 왔던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은 핵무기를 가질 권리가 있고 미국의 핵무기는 세계 평화를 위한 좋은 무기인 반면, 다른 나라들은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되며 타국의 핵무기는 세계 평화를 해치는 나쁜 것이라는 이중기준이 지난 70여 년간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지배해 오면서 핵무기는 이제 미국인의 정체성의 일부가 됐다.


현재 세계에는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의 공인된 핵 보유국과 함께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 3개의 비공식 핵보유국이 있다. 뒤의 세 나라가 핵을 갖게 된 것은 미국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인도는 라이벌 중국에 대한 대항마로, 파키스탄은 서아시아 최대의 미 동맹국이기 때문이다.


origin_트럼프·김정은이곳에서비핵화합의할까.jpg▲ 북미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8일 회담장소로 선정된 싱가포르 센토사섬 내 카펠라호텔 모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는 12일 싱가포르 남부 센토사섬의 카펠라호텔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 등을 주요 의제로 하는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핵무기는 미국에게 무엇인가?


미국의 주류 정치인과 제도권 학자들은 미국의 핵무기는 평화를 지키는 좋은 것이며 북한, 이란과 같은 무책임하고 무모한 세력이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핵무기로 인해 2차 대전 이후 세계가 안정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의 많은 시민들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


반면 비판적 지식인과 시민들, 평화 운동가들은 미국에게 핵무기는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거대한 망치이며, 세계적 불안정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또 미국이 핵무기 보유를 고집하고 핵무기를 앞세운 군사주의를 계속하는 한, 이에 저항하려는 국가와 세력들의 핵무기 보유 시도는 결코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말로 뛰어난 협상가라면 이점을 파고 들어야 한다. 어눌한 듯하지만 천천히 할 말은 다하는 그런 화법으로 트럼프를 웃으면서 몰아 붙여야 한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북한만의 핵무장 해제가 아니라 한반도에서 모든 핵 위협이 사라지는 그런 상황을 한반도 비핵화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밝혀야 한다. 말하자면 미국이 북한을 포함하는 한반도를 핵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내놓으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 기반 위에서 양국의 관계 정상화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협상이다. 밀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한쪽이 의기양양해서 완전히 발가벗기 전에는, 그리고 그것을 검증을 하기 전에는 어떤 진전도 있을 수 없다고 하는 태도는 항복 문서에 조인을 지켜보는 승전국의 태도일 뿐이다.


우리 역시 ‘한반도의 비핵화’라고 말하면 열에 아홉은 북한의 핵무장의 완전한 포기와 해제를 말하고 거기에 더해 어렵기 짝이 없는 검증이 확실히 보장돼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제 그 발상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간절히도 원하는 것은 핵 없는 한반도의 평화 아닌가.


지금 상황을 ‘북의 위장 평화공세’라면서 트럼프도 문대통령도 세상이 모두 김정은에 속고 있다고 핏대를 올리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정말 한심한 부류들이다.


위장평화라도 평화가 대결과 대립, 전쟁보다 낫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일찍이 버틀란트 럿셀은 ‘그 어떤 숭고한 전쟁도 썩어 문드러진 평화보다 못하다’고 일갈했었다. 저 부류야말로 전쟁 혹은 전쟁 상황을 바라고 있는 부류다.


설사 꽃이 몇 달 피었다 진다고 해서, 그 꽃이 핀 순간을 두고 위장 아름다움이라고 하진 않는다.


우리는 아름답게 피려 하는 이 꽃을 활짝 오래 피우고 싶다.


그 첫 모종을 뜨는 시각이 나흘 뒤 화요일 아침이다. 그 아침을 상쾌하게 맞고 싶다. 그리고 저녁에는 환호를 올리고 싶다. 



안동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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