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권순욱의 지방선거 리포트③] YS는 경남의 맹주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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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의 지방선거 리포트③] YS는 경남의 맹주가 아니었다

서부경남은 대구경북 영향권…1987년 대선 김영삼 승리가 오히려 예외적 상황
기사입력 2018.05.21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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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시작된 이후 영남지역을 주로 다니고 있다. 부산과 경남의 창원, 진주, 김해, 그리고 경북 안동이다. 이제 대구와 경북 포항, 울산, 경남 진주, 거제를 거쳐 서부경남이라 일컫는 거창, 함양, 산청 등을 다녀볼 계획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대를 오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50%대다. 대한민국 전 지역에서 우세하다. 심지어 자유한국당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와 경북에서도 근소하게 더불어민주당이 우세하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방선거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이 지지율이 고스란히 반영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거, 특히 지방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와도, 대통령 선거와도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는 했다. 각 지역마다의 특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영삼 87년 대선.jpg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남의 맹주가 아니었다

흔히 3김 시대는 지역주의 군웅할거 시대라고 말한다. 호남의 김대중(DJ), 부산경남(PK)의 김영삼(YS), 충남의 김종필(JP)이라는 걸출한 정치인들이 지역을 호령하던 시대였다.

박정희 유신독재 시대를 거쳐 전두환 군부독재체제에서 지역분할 정치는 극단을 향했다. 급기야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정권 연장 수단으로 ‘3김정치 종식’을 들고 나왔다.

87년 대선 광역 승자.jpg

실제로 1987년 대통령 선거는 지역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대선 후보 득표를 보면 그렇다. 대한민국 지도를 놓고 단순화를 하면 정확하게 3분할이 된다.

그러나 속살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특히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이자 ‘문재인의 복심’이라 불리는 김경수 전 의원이 출마한 경남이 그렇다. YS가 지배한 것으로 알려진 부산과 경남에서 부산은 확실히 YS가 압도했다. 하지만 경남은 사정이 다르다.

경남지역 전체 득표수를 보면 민주정의당 노태우 79만2757표(41.2%),통일민주당 김영삼 98만7042표(51.3%), 평화민주당 김대중 8만9804표(4.5%)로 YS가 우세했다. 하지만 득표율만 보더라도 간신히 50%대를 넘어선 수준이다.

경남 각 지역으로 들어가 보면 YS가 경남지역의 맹주였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우선 1987년 대선 당시 경남에 포함됐던 울산광역시는 제외한다. 결과만 말해두자면 울산은 2개의 선거구에서 근소한 차이지만 노태우가 김영삼을 모두 이겼다.

현재 경남지역에 속한 시군별 승패는 어떨까?

ys는 경남 맹주 아님01.jpg

득표율과 비슷하게 노태우가 7개 지역에서 김영삼을 상대로 승리했다. 눈여겨볼 만한 지역은 창녕군, 합천군, 의령군, 산청군이다. 

이 지역은 경남에 속하지만 정서나 문화는 대구 영향권에 있는 지역이다. 특히 부산은 멀다. 전두환 고향이 합천이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고향이 창녕군이다. 두 사람 모두 고등학교를 대구에 있는 대구공고와 영남고 출신이다.

ys는 경남 맹주 아님03.jpg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창녕군은 대구에 붙어 있고, 창녕군 좌측으로 의령군과 산청군이 있는데 이들 지역은 경북 성주군, 김천시와 이웃하고 있다. 행정구역상 경남에 속하지만 생활문화권은 대구경북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경북 경산시와 이웃한 경남 밀양시의 경우에도 김영삼은 근소한 차이로 노태우를 겨우 이겼다.

대구경북과 붙어 있는 창녕군, 합천군, 거창군의 영향권이 남하하면서 함양군, 산청군으로 이어지며 노태우가 승리했다.

서부경남의 중심지는 진주시다. 서진하는 부산의 영향력과 남하하는 대구경북의 영향력이 맞부딪치는 지역이다. 

김영삼이 맹주였던 부산의 영향력은 창원시를 통해 함안군을 거쳐 진주시로 서진하는 형국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대구경북의 영향력은 함양군, 산청군을 거쳐 하동군과 진주시로 남하한다. 그 격렬하게 부딪치는 지역이 바로 진주시다.

진주시는 1990년 3당 합당 이후 오랫동안 자유한국당과 그 전신 정당의 영향권에 있었다. 

1987년 당시 진주시는 김영삼이 승리했다. 진주시에서 명망 있던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삼과 함께 정치를 시작했지만 3당 합당을 거부하고 무소속으로 남은 김재천, 김영삼을 따라 민주자유당으로 넘어간 조만후 같은 걸출한 정치인이 바로 그들이다.

진주시 바로 옆인 하동군의 경우 오늘날 압도적인 자유한국당 텃밭이지만 1987년과 1988년 당시만 해도 통일민주당이 우세했다. 하동군이 배출한 문부식이라는 인물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8년 총선, 김영삼에게 3당 합당을 유혹했을까?

하지만 이듬해 치러진 총선은 막연하게 ‘PK의 맹주’라고 불리던 김영삼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한 선거였다. 

먼저 1987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당시 경남에 속했던 울산은 제외한다. 참고로 1988년 총선에서 울산은 4개의 지역구를 민정당 2석(김태호, 박진구), 민주당 1석(심완구), 무소속 1석(정몽준)으로 결론났다.

ys는 경남 맹주 아님02.jpg

울산을 제외한 경남의 18개 지역구에서 치러진 총선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1987년 대선과 달리 민정당의 승리로 끝났다. 결과는 민정당 10석, 통일민주당 8석이었다. 게리멘더링을 감안하더라도 김영삼의 영향력이 부산에 인접한 동부경남과 고향인 거제에 국한됐다. 1987년 대선에서 승리했던 밀양군, 사천군과 하동군, 고성군, 통영군 등 진주시를 제외한 서부경남 일대를 모두 넘겨줬다.

1988년 총선 결과는 그 이후 30년간 투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김영삼이 민자당에 합류한 이후 서부경남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1988년 구도가 지속되고 있다. 

그 예외는 2008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의 이방호 사무총장이 친박 공천학살의 주범으로 몰리며 민주노동당 강기갑 지지로 인한 반사이익 성격이 짙었다. 

일반적으로 1990년 3당 합당 이전에는 경남지역이 야성이 강했던 곳이라고 말을 하지만 이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1987년 경남지역 전체로 하나로 묶어서 계산한 득표가 가져온 허구에 불과하다.

1988년 총선에서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은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에 뒤지며 3당으로 주저앉았다. 여기에 김영삼은 경남에서조차 민정당에게 패배하며 대구경북 기반의 민정당의 구심력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서부경남은 여전히 대구경북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다.

2010년 야권단일후보였던 무소속의 김두관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 후보였던 한나라당 이달곤의 약한 경쟁력과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 분위기 직후여서 인천 송영길, 충남 안희정, 강원 이광재 등이 동시에 승리하던 분위기도 무관하지 않지만 서부경남에서 박빙의 싸움을 벌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origin_안철수경남지원사격.jpg▲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부곡동 코아사거리에서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왼쪽), 김맹곤 김해시장 후보(오른쪽)와 함께 인근 상가를 다니며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후속 기사에서 자세하게 서술하겠지만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나섰던 김경수 후보는 한나라당의 홍준표 후보에게 김해시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패배했고, 서부경남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려버렸다. 그 결과 홍준표 91만여표, 김경수 56만여표라는 현격한 격차의 패배를 맛봐야 했다.

심지어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낙동강 벨트인 양산시, 김해시, 창원시와 출생지인 거제시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홍준표에게 패배했다.

여타 지역도 특징적인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겠지만 경남지역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여론조사만으로 승패를 가늠하기에는 무수한 변수가 존재하고 있다. 

다음 기사에서는 경남지역의 선거역사를 좀 더 살펴보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변화가 2018년 현재 선거운동에서 어떤 변수로 존재하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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