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역사적으로 봐도 ‘대통령제’가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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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봐도 ‘대통령제’가 적합하다

천년 동안 봉건제 역사 없었던 우리에게 ‘의원내각제’는 안 맞는 옷
기사입력 2018.03.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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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유럽은 프랑스만 빼고 다 의원내각제일까?

의원내각제, 혹은 유사내각제인 이원집정부제, 분권형 대통령제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드는 근거 중 하나는 “민주주의 선진국인 유럽은 거의 대부분 의원내각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선진국 중 대통령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앙일보.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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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기사에는 오스트리아, 핀란드가 이원집정부제로 구분되어 있으나, 이들 나라도 실제는 내각제에 가깝게 운영되고 있어, 유럽에서 프랑스만 제외하곤 거의 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 왜 유럽은 프랑스만 제외하곤 모두 의원내각제일까?

그들의 주장대로 진짜 의원내각제를 채택해야만 선진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인가?


2. 유럽의 의원내각제는 봉건제로부터의 자연스러운 역사 발전 과정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의원내각제와 민주주의의 발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유럽 대다수 나라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게 된 것은 바로 ‘봉건제도’라는 역사적 이유 때문이다.

유럽봉건제도.jpg

5세기 서로마가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멸망하고 유럽엔 봉건제도가 새로이 등장하게 되었다.

봉건제도 하에서 왕은 제후에게 봉토를 나눠주었고, 제후는 봉토에선 왕과 다름없는 권한을 누렸다. 이런 체제가 근대 민주주의 제도에도 그대로 이식되어 지역 제후는 그대로 의원이 되었고, 왕은 상징적 존재로 남아 실제 정치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들끼리 의논하여 결정하는 제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게 된 것이 바로 ‘의원내각제’이다.

프랑스가 유독 대통령의 권한이 강한 이원집정부제를 택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이런 역사적 맥락에 의거해 설명할 수 있다.

같은 유럽 대륙의 독일, 이탈리아 등이 지역적으로 분할되어 중앙집권적 통일을 이룩한 것이 19세기나 되어서였으나, 유독 프랑스만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중앙집권적 국가였다.

프랑스는 12세기 말 필립 오귀스트 왕부터 지방 제후들의 권한을 축소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태양왕’이라 불리던 루이 14세(1643~1715) 때에는 동양적 전제 군주와 맞먹는 절대적 권위와 권력을 행사하여 “짐이 곧 국가다”라는 선언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렇듯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전통이 역사에 오래 뿌리 박혀 있기 때문에 유독 유럽식 의원내각제가 어울리지 않았고, 그래서 드골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이 아주 강한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사한 사례로 일본을 들 수 있다.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 중 유독 오랜 기간 봉건제가 유지되었던 나라이다.

7세기 카마쿠라 막부 이후 메이지 유신까지 무려 1200년간 일본은 유럽과 비슷한 형태의 봉건제도로 운영되어 왔고, 그래서 일본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것 또한 자연스런 역사의 흐름이다.

지금도 과거 지방 영주였던 가문의 자손이 대를 이어 지역구를 세습하여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일본이다.

결국 최적의 권력구조는 그 나라의 역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3. 우리나라는 무려 1000년간 중앙집권 국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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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엔 유럽과 같은 식의 봉건제도가 운영되었던 적이 없다.

게다가 고려부터는 전 국토에 지방관을 파견하여 통치하는 중앙집권화를 완성하였고, 이후 한 번도 이런 구조가 바뀐 적이 없다.

우리나라는 무려 1000년간 중앙의 왕이 전국을 직할 통치하는 중앙 집권적 국가였고, 그러니 당연히 ‘대통령제’가 익숙하게 느껴지고, ‘의원내각제’는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여론 조사에서 대통령제 지지율이 70%를 웃돌곤 하는 것이다.


4. 조선조 왕권이 강했을 땐 태평성대, 신권이 강했을 땐 민생도탄

조선조 때눈 왕권이 무한정 강력한 것은 아니었다. 왕권과 신권이 상호 견제하며 정치가 이뤄진 현대 민주주의적 요소가 다수 포함된 정치구조였다. 

그런 조선조에서도 때론 왕권이 더 강한 때가, 때론 신권이 더 강한 때가 있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왕권이 강했던 시절엔 태평성대가 펼쳐졌던 반면, 신권이 왕권을 압도할 때엔 민생이 도탄에 빠지곤 했다.

전자에 해당되는 것이 세종, 성종, 정조등의 성군이 통치하였을 때고,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왕권은 땅에 떨어지고 세도가들이 지들 맘대로 정치를 농단했던 조선조 말의 ‘60년 세도정치’ 때였다.

이런 역사적 전통을 보더라도 국회가 현재보다 권력을 강화하여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식의 개헌은 사리에 맞지 않다.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가 이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기도 하다.

댓글.GIF

위는 3월 17일 자 연합뉴스의  <여 “지방선거와 동시개헌” vs 야 “권력구조 개편이 우선”>란 네이버 메인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자유한국당식 ‘국회가 더 많은 권력을 가져가는 개헌’에 절대 반대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에 비춰볼 때 너무나 당연한 반응인 것이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개헌의 최종 권한 또한 국민이 갖고 있음을 야당 등 정치권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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