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잡상인] 동어반복, 형용모순 그리고 ‘모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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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상인] 동어반복, 형용모순 그리고 ‘모름’에 대해

‘무지(無知)’는 죄 아니지만…모르는 걸 모른다 하지 않으면 문제
기사입력 2018.01.1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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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어반복’이란 “한 단어나 문장에서 동의어나 유의어를 되풀이해서 쓰는 것”이라는 뜻으로, 영어의 ‘tautology’(토톨러지)를 일본에서 번역한 조어가 그대로 한국어에 들어와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다.

중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동어반복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면서 가장 많이 예로 드는 ‘역전 앞’에 대해서는 ‘역 앞의 앞’ 즉 ‘○○역 광장의 앞’이라는 의미라는 일각의 주장이 있으니 일단 논외로 하기로 하고…. 

고려대국어대사전에서는 동어반복의 사례로 ‘검은 까마귀’와 ‘늙은 노인’이라는 표현을 들고 있다. 까마귀나 노인이 원래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성을 쓸데없이 수식어로 덧붙인 표현이어서 부적절한 문장 구성이고, 실제 그런 표현을 쓰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위키백과에서 사례로 제시된 ‘솔직한 고백’과 ‘새로운 발명’이라는 표현은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언론사 기사에 빈번하게 쓰일 정도로 그 용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검은 까마귀’와 ‘늙은 노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 반면 ‘솔직한 고백’과 ‘새로운 발명’이 흔하게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우선적으로는 ‘고백’과 ‘발명’이라는 단어 안에 ‘솔직하다’와 ‘새롭다’는 의미가 이미 들어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쉽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 하나의 이유이겠고, 단어에 이미 담겨있는 의미를 더 강조해 표현하고자 하는 화자의 욕구도 한 이유일 것이다.

위키백과에 제시한 사례로 보면, ‘사하라 사막’, ‘리오그란데 강’, ‘몽블랑 산’, ‘황허 강’처럼 어원이 유래한 언어에서 사하라(아랍어), 리오(스페인어), 몽(프랑스어), 허(한자 河=하=강) 등이 각각 사막, 강, 산, 강을 뜻하는 단어라는 점을 알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전자에 해당하고, ‘무궁화꽃(無窮花꽃)’이나, ‘동해 바다(東海 바다)’ 등은 후자에 해당된다.

다른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이런 동어반복 구절을 쉽게 사용하고 접하게 되는 보다 본질적인 이유에 우리가 사는 실제 현실세계에서 ‘거짓 고백’이나 ‘흔하고 어디선가 봤던 발명’ 같은 ‘형용모순’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는 것도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동어반복과 대개 비슷한 어절 구조를 갖는 ‘형용모순’은 꾸미는 말이 꾸밈을 받는 말과 서로 모순되는 상황을 말한다.

the_black_swan_by_galen_marek-d67j4al.jpg▲ ‘검은 백조’라는 뜻의 ‘블랙 스완’은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가리키는 경제 용어로, 월가 투자전문가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동명의 저서를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언하면서 두루 쓰이게 됐다. 사진은 나탈리 포트먼 주연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2010년 동명 영화 포스터.
 
‘검은 백조’라는 표현은 1790년 오스트레일리아서 실제 검은색 고니가 발견됐다는 학계 보고가 있기 전까지 형용모순을 설명하는 가장 극명한 구절로 애용되어 왔다고 한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둥근 네모’라는 구절을 형용모순의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하고 있는데, 2018년의 한국사회에서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사례를 찾아보면 ‘건전한 보수’나 ‘공정한 언론’ 같은 표현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진지함)

자율주행자동차 혹은 자동자동차

최근 몇 년 사이, “지금이 21세기구나”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절감하게 해주는 시사용어 중에는 ‘자율주행자동차’와 ‘가상화폐’가 있다. 두 단어 역시 ‘동어반복’ 어휘이다. 

자율주행자동차에서 ‘자율주행’과 ‘자동’은 명백하게 같은 의미여서, 개인적으로 ‘자율주행차’라는 단어를 ‘자동자동차’라고 바꿔서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는데, 좀 더 생각의 가지를 뻗어본 결과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둔 적이 있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차’의 어원인 한자 ‘車’는 사전에서 ‘수레’ 혹은 ‘수레바퀴’라는 의미로만 소개되고 있지만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차’라는 말을 쓸 때는 ‘자동차’를 기대하지, 수레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머지않은 미래에는 누군가 ‘차’라고 말하면 요즘 말하는 ‘자율주행자동차’를 뜻하는 말로 이해하고, 현재 일반적으로 도로를 돌아다니는 ‘자율주행이 되지 않는 보통의 자동차’는 지금의 ‘수레’와 비슷한 정도로 옛날 물건 이미지를 갖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origin_자율주행차시승하는이낙연국무총리.jpg▲ 이낙연 국무총리(왼쪽)가 2017년 11월 3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광교테크노벨리 차세대융합기술원에서 자율주행차를 시승하고 있다.
 
화폐는 ‘믿음’에 기댄 가상의 가치

지난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우리나라 가상화폐 거래의 경우 사실상 투기, 도박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며 “산업 발전의 긍정적 측면보다 개인의 금전적 피해를 유발할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까지도 목표로 하는 법무부 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세계 가상화폐 시장이 들썩였고, 온라인 여론의 장에서는 박 장관의 발언이 갖는 의미와 여파 전망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으며, 기획재정부와 청와대에서 “박 장관의 발언은 법무부 입장일 뿐 정부의 조율된 정책이 아니다”라는 해명을 내놓고서야 혼란은 가라앉았다.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든 플레이어들은 가상화폐보다 ‘암호화폐’가 맞는 말이라고들 하던데, 언론보도나 일상에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단어는 ‘암호화폐’보다 ‘가상화폐’ 쪽인 듯하다.

그런데, ‘화폐’, 다른 말로 ‘돈’이라는 것은 그 태생부터가 가상에 기댄 존재이기 때문에 ‘가상화폐’ 역시 동어반복이다.

가장 오래된 화폐인 조개껍데기나 돌덩이를 비롯해 쌀, 비단, 보석 등 현물화폐는 물론 그 뒤를 이어받은 금속화폐와 신용화폐(지폐, 어음, 수표)까지 모든 화폐는 물질 본연의 씀씀이와는 다른 ‘약속’ 혹은 ‘신용(믿음)’이라는 가상의 존재에 기대어 그 힘과 가치를 얻고 유지한다.

인터넷 뱅킹이 상용화된 이후에는 지폐와 주화 혹은 증권이라는 현물을 만져보지 못한 채 통장 혹은 모니터에 나타나는 숫자 자체만으로 ‘화폐’의 거래와 보관이 이뤄지고 있지만 현물 지폐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돈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신용(믿음)’이라는 가상의 존재는 의외로 매우 취약한 것이어서 금융정책 수장의 무신경한 말 한마디에 거세게 흔들릴 수 있고, 심한 경우 국가경제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도 적지 않게 벌어졌던 것이 20세기 이후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이다.

이는 마치 ‘인체’가 혹독한 환경을 잘 이겨내는 강인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조그마한 환경 변화에 의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origin_암호화폐거래소과세하나.jpg▲ 지난 11일 서울 중구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에 설치된 시세 전광판에 가상화폐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 국세청은 지난 10일 빗썸과 코인원 등 국내 주요 암호화폐거래소에 직원을 급파해 일제히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과세당국은 암호화폐에 과세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논의중인 가운데 보유세, 부가가치세, 거래세보다는 투자수익에 과세할 수 있는 양도소득세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지=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 혹은 혐오

언어는 인식의 현신이다. 인식이 ‘영혼’이라면 언어는 ‘육체’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이전까지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존재가 등장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었던 다른 존재에 빗대어 그 새로운 존재를 인식하고 이해한후 거기에 근거해 이름을 붙이려는 경향을 갖게 마련이다. 

2009년 ‘신종 플루’ 사태가 실제 피해 규모에 비해 다소 과도하게 대중의 공포감을 자아냈던 가장 큰 이유는 과거 유행했던 독감들과 달리 보건당국이 독감의 ‘이름’을 곧바로 정해주지 못하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독감’이라는 뜻의 ‘신종플루’라 불렀다는 점 그 자체였다.

법 전문가인 박상기 장관이 가상화폐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표현하면서 사회적 혼란의 원인이자 단죄의 대상으로 본 것 역시 가상화폐라는 전혀 새로운 존재를 기존에 알고 있던 유사해 보이는 개념에 빗대어 이해하려던 과정에서 벌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박상기 장관의 가상화폐에 대한 언급 중에 “투기, 도박과 비슷한 양상”이라는 표현은 사실 현대 자본주의 금융경제 시스템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금융투자에 대해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는 표현이다. 

그래서, 지금의 ‘가상화폐 현상’을 최일선에서 관찰·연구하면서 대응 정책을 고민하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같은 정부부처에서 박 장관 발언에 화들짝 놀라 즉각 반박하며 상황을 수습하려 애쓴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었던 셈이다.

origin_박상기법무부장관2018년신년특별사면브리핑.jpg▲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2018년 신년 특별사면과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사실 이번 해프닝을 통해 필자가 느낀 것은 오히려 그동안 개인적으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가상화폐’ 현상 이면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어떤 긍정적 측면이 크게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것이었다. 가상화폐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는 착각들을 많이 한다. 

그래서 괜히 아는 척했다가 진짜 전문가에게 걸려서 영혼이 탈탈 털릴 정도의 개망신을 당하는 사례도 인터넷 세계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런데 공자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이라는 말로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고,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경구인 “너 자신을 알라”의 의미는 ‘너의 무지를 알라’는 것이다.

‘세계 4대 성인’ 중에서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한 이야기니 만큼, 새겨듣고 이해가 안되면 외우기라도 하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지혜라고 단언해도 되지 않을까?

* ‘잡상인(雜想印)’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느낀 이야기들을 가볍게 다루는 코너입니다. 잡다한 생각을 도장처럼 새긴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아무거나 다 팔아요’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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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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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요
    •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지적이고 공부 많이 한 글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흡족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상화폐'라는 것에 개념은 안 서고, 새로운 출현이라고만 봐도 될런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법무장관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도 그렇겠지요. 다른 화폐는 정해진 가치가 있는데 이건 변동해요, 또 그걸 최종적으로 그 가치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가가 정말 무지한 저의 궁금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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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탁
    • 라이요일기예보처럼 매일 나오는 뉴스가 주가와 환율이지요.모든금융자산은 실시간으로 가치가 변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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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보문파
    • 가상화폐는 사행성, 일확천금 심리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제 kbs방송 이게 700조인데 장관 말 이후 600조 도고 오락가락한다는 식의 비판 늘어놓던데 수치나 논리가 맞는건지 의심스러워하다 채널 돌려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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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탁
    • 초보문파두가지는 확실합니다.
      1.난 모르겠다
      2.방송에 나와서 떠드는 애들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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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컬리넌
    • 좋은 글입니다.
      어렵고도 간결한게 세상입니다.
      명언중에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내가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 그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다라는 말이 있죠.

      가상화폐? 암호화된 사이버머니?
      내가 가치를 부여하기 전에는 그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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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규포
    • 잘읽었습니다. 모르는걸 모른다고 하고 시작하는게 이번 비트코인논란에 꼭 필요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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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천복
    • 잘 보았습니다.
      저 역시 옛날부터 동어반복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고집(?)을 부렸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역전앞은 동어반복이라고 할때 저는 아니라고 ,,,,역전이라는 것은 역의 앞,또는 역광장의 뜻이 있는데 그 광장의 앞쪽에서 라고 해석 할수있지 않겠습니까.그리고 역전이라는것은 역앞의 엄청난 넓이의 모든 장소를 의미하는것이 아니기에... "역전앞에서 만나자"해도 자연스럽다 봅니다.마찬가지로 역전옆,,,
      무궁화꽃도 틀린것은 아니라 봅니다.
      '무궁화'라는 단어가 나무 이름이기에 반드시 꽃을 표현 하려면 무궁화 나무의꽃,즉 무궁호꽃 이 맞겠죠.
      그게 아니면 무궁화의 나무이름은 '무궁'이 되는 ,,,ㅋ
      그외 꽃나무도 많지요.자율주행 자동차도 아직 단어정립이 안되서 그렇지 틀린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자동차 라는 단어가 혼자서 자동으로 굴러가는 차라는 뜻이 아니고 손수레와 달리 사람이 손,발만 까딱하면 쉽게 굴러가는 자동으로 굴러가는차 라는 뜻이 있으니 사람이 운전안해도 차스스로 알아서 간다는 의미에서 자율주행 자동차라고 하겠죠.자율주행차 라고 할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흔히 차 하면 자동차를 의미하기에 상관 없다고 봅니다.
      결론은 이런것에 너무 체력소모 하는것같습니다.
      소위 정체불명의 외계어가 난무하는 지금 당연히 바른
      말,글을 써야겠지만 위와 같은것은 뒤에오는 단어를 강조하기 위한것으로 봐도 무방할것 같습니다.저도 그렇지만 글쓰는 사람도 국어 올바르게 쓰는,쓰려하는사람 많이 없습니다.
      극단적인 오류가 아니면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되 느슨하게 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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