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민들은 우리나라 기자를 생각하면 “질문 안 하는 기자, 질문 못 하는 기자”라는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대표적인 모습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 기자회견을 하면 아무런 질문 없이 받아 적기만 하고 있거나,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논의되던 시점에 촬영, 노트북 금지 조건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두 손 모으고 다소곳한 자세로 서서 열심히 경청만 하던 모습입니다.
또 하나는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에게만 질문 기회를 주겠다고 하고 5분 가까이 이 말 저 말 하면서 시간을 끄는데도 결국 질문이 없어서 중국 기자가 질문을 하는 장면이죠.
저도 사실은 질문을 잘 못하는 편이라ㅠㅠ 한국 기자들은 질문 못하는 사람만 뽑히는 것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자들은 왜 이렇게 질문을 못 하는 것일까요?
좋은 질문 vs 나쁜 질문
어제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보면서 좋은 질문, 나쁜 질문을 꼽아 달라고 제 페친들에게 여쭤봤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 외신 기자들의 질문을 꼽았습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지금이 그런 상황이죠) 한국은 어느 편을 들 거냐, 북핵 해결에 있어서 한국은 대화 정책 위주, 미국은 강압 위주 정책인데 이 노선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들이었지요.
어떻게 보면 평이한 질문인 것 같은데 왜 이들이 좋은 질문으로 꼽혔을까요? 그것은 현지 국민, 즉 미국 사람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외신 기자들은 현지 국민들이 관심 있어 하고 궁금해 하는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듣기에는 평이해도) 좋은 질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자들은 독자, 국민, 시민들이 무엇을 궁금해 하고, 무엇을 관심 있어 하는지 알고 있을까요? 아마 잘 모를 겁니다. 안다, 모른다를 떠나 아예 관심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기자들이 질문하는 이유
우리나라 기자들이 하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독자가 아닌) 자기가 궁금해 하는 것을 물어보는 질문이고, 또 하나는 질문 받는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질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질문 못 하는 것으로 찍혀 있는 우리나라 기자들도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면 입에서 불을 뿜었습니다.
독자와 국민이 궁금한 것을 물어보느라고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대통령을 곤란하게 하고, 참여정부를 어렵게 만들 질문만 골라 하느라 그렇게 불을 뿜었던 것입니다. 대통령으로 하여금 거칠고 격한 반응을 이끌어내면 금상첨화였죠.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는 매일 오후 2시에 대변인 주재로 정기 브리핑을 했습니다. 이때도 기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였습니다. 한두 명 질문하고 나면 질문하는 기자가 없었습니다.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드는 모습이 연출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질문을 안 하거나 못한 겁니다. 독자와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은 관심이 없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도 없으며,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들 생각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질문할 게 없었던 것입니다.
질문을 잘 하려면?
따라서 질문을 잘 하려면 독자와 국민들이 뭘 궁금해 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으며, 뭘 알고 싶어하는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독자들과 소통을 해야겠죠? 그런데 우리나라 기자들은 독자와 소통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독자와 소통한답시고 SNS를 하는데, “기자님 멋져요^^”, “기자님 훌륭해요” 이런 얘기 들으면 좋아하면서도, 조금 싫은 소리나 거친 소리를 하면 바로 발끈 화를 내고 페절을 하고 차단을 해버리기 일쑤입니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은 생각이 아니 드는 것도 아닙니다만 심지어 어떤 기자는 어제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당신 지지자들 댓글 때문에 기사도 맘대로 못 쓴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지요.
언론사 차원에서 독자들과 소통을 하려고 하기는 합니다. 그래봐야 독자회의니, 옴부즈맨이니 해서 회사 회의실에 모셔놓고 음료수와 다과를 대접하며 고운 소리로 하는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서로 좋은 소리만 주고받고 아픈 소리도 고운 말로 포장해서 품위 있고 점잖게 주고받는 것도 소통은 소통입니다.
거친 소통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러나 보다 본질적이고 효과적인 소통은 거리에서, 시장에서, 현장에서 그들의 거친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입니다. 기자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댓글이 바로 이런 거친 목소리가 가장 생생하게 드러나는 수단입니다.
거리에서, 시장에서, 현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독자들은, 신문사 회의실에서 음료수와 다과를 먹으며 고운 말로 조근 조근 생각을 밝히는 분들처럼 편안하고 얌전한 상황이 아닙니다.
화가 나서, 열불 나서 댓글 다는 분들에게 고운 말 바른 말을 바라는 것은 그 자체가 무리입니다. 듣는 사람이 알아서 걸러 들어야 합니다.
그래도 너무 심하지 않냐구요? 어제 대통령 말씀대로 아마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겁니다. 무슨 욕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제 대통령에게 하소연했던 그 기자가 대통령이나 여당 정치인보다 더 험한 욕을, 더 많이 듣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 기자가 지목한 대통령 지지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분들은 (얌전한 것만 골라도) 문베충, 문슬람 소리를 일상적으로 듣고 삽니다.
어제 뉴비씨 라이브에서 어떤 의원과 인터뷰를 하면서 권순욱 본사 대표가 “여성 지지자들은 ‘달빛O녀’ 소리도 듣는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O녀’는 매춘의 의미를 담는 비속어입니다.
남성 지지자들이 들으면 정말 가슴이 찢어지고 눈물이 나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유튜브 댓글 창에는 어떤 답이 올라오는지 아세요? “달빛O녀 소리 하도 들었더니 이젠 무덤덤하다”는 겁니다.
기자님들이 무슨 험한 소리를 얼마나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소리를 들어보기는 하셨으며, 들어도 무덤덤할 만큼 많이 들어보기는 하셨나요?
담담하게 생각하세요
어제 대통령에게 하소연했던 그 기자는 회견 후 또 욕을 먹고 있다고 스스로 기사를 올렸더군요. 그런데 마지막 줄이 압권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자는 이 짧은 기사를 쓰는 동안 주요 단어마다 수십 번씩 썼다 지우면서 망설였다. 이후에 쏟아질 악성 댓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네. 맞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비판이든, 비난이든, 아니면 욕설이든, 부정적인 반응이 있으면 그 뒤부터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조심스러워지죠.
그런데 모든 기자님들께 여쭤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기사를 쓸 때 언제나 아무런 부담이나, 압력이나, 우려나, 두려움이나, 조심스러움 없이 아주 자유롭게 기사를 쓰시나요?
아마 안 그럴 겁니다. 이렇게 쓰면 부장이 신경 쓰이고, 저렇게 쓰면 어디서 난리칠까봐 눈치 보이고, 또 다르게 쓰면 광고 떨어질까봐 겁나고, 그래서 또 다르게 쓰려면 취재원과 의 상할까봐 무섭고, 이러지 않습니까?
이게 자연스러운 겁니다. 이 세상 누구도 완벽한 자유를 누리며 글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자는 가장 다양하고 강력한 견제를 받으며, 그런 압력과 방해와 두려움을 뚫고 글을 쓰는 직업이지요.
독자든, 누구 지지자든, 그들의 댓글 때문에 기사 쓰기가 어렵다면, 그것은 기사 쓰기 어렵게 만드는 숱한 요인 중에 하나가 더 생긴 것뿐입니다.
어쩌면 진작에 가장 중요하게 떠받들고 모셔야 할 요인을 이제야 뒤늦게 만나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유난 떨지 말고, 담담해지세요. 그리고 받아들이세요. 대통령의 충고처럼.
조선일보 박정엽 기자에게 일독을 강추합니다.
귀한 질문기회 얻어서 하는 질문의 수준이 너무 저렴하더군요
포털 댓글에서 처음 달빛*녀단이라는 말을 봤을 땐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는데, 며칠 지나니까 저도 무덤덤해지더라구요. 욕도 안나오고 그냥 자동 비추천/자동접기를 누르게 돼요. 이런 거에 익숙해지면 안되는데, 멘탈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기도 하고. 그냥 그런 댓글 캡쳐하고 있어요.
대통령 곤란하게해서 자기네들 돋보여볼까...
딱 수준이 그정돕니다
언론이 언론으로 기자가 기자로서 재대로 평가받으려면 광고로 경영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오로지 후원으로 경영할수 있는 제가 가장 이상적인것 같지만 그건 참 불가능한 이야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