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기획연재] 너희가 민주당을 아느냐? 민주당 영남 공략의 역사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기획연재] 너희가 민주당을 아느냐? 민주당 영남 공략의 역사

지지자라면 알아야할 민주당史 (8) 김대중의 집권과 16대 총선②
기사입력 2018.01.03 12:38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참여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초, ‘토씹새격문 : 한나라당편’이라는 글로 대한민국 정치권을 들었다 놨던 정빈나씨(당시 필명 ‘2004년 척결’)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작성했다는 ‘민주당의 역사’ 시리즈를 새롭게 손봐서 뉴비씨에 연재한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가 ‘민주당의 정통 역사’라 평가한다는 정씨의 이번 연재물은 민주당 당맥의 역사적 연원부터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과 16대 총선(노사모 탄생의 계기가 된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 낙선이 있었던 그 선거)까지를 다룬다. [편집자주]

- 목 차 - 

1. 민주당 당맥의 역사적 연원 : 고립과 모색
2. 1991년 야권통합과 14대 총선 : 첫번째 덧셈
3. 1993~1995년까지의 민주당 ①
4. 1993~1995년까지의 민주당 ②
5. 김대중의 정계복귀와 15대 총선 : 패배는 승리의 어머니
6. 분당 이후의 꼬마민주당
7. 김대중의 집권과 16대 총선 ① : 새천년민주당 창당과 전국정당화로의 도전
8. 김대중의 집권과 16대 총선 ② : 민주당 영남공략의 역사
9. 김대중의 집권과 16대 총선 ③ : 민주당, 전국정당화의 첫발을 떼다

***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김종필, 박태준 총재 회동.jpg▲ 1998년 1월 21일 인수위원회 당선자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김종필 자민연 명예총재와 박태준 총재를 초청한 가운데 ‘향후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새 정부의 목표를 강조하고 있다.
 
영남권에 민주당의 세력기반을 구축하는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도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입니다. 영남의 표심이란 너무나도 분명한 상수니까요. 

김대중 대통령 본인도 3번 도전 끝에야 4번째에서 하늘이 도와 이인제가 영남 표심을 분열시켜 줬기에 가까스로 이겼던 것이지, 수도권-충청-호남의 서부벨트 하나만으로는 어림도 없었습니다. 

서부벨트에서는 모당을 이긴다고 해도 압도적으로 이길 수는 없고, 게다가 충청권은 너무나 변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DJP와 행정수도라는 메가톤급 이벤트가 터지고서야 야권이 충청에서 이길 수 있었죠. 

게다가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과 연대하는 과정에서 당시 자민련 안에서 큰 세력을 차지하고 있던 박철언, 박준규 등의 TK 정치인들도 끌어들였고, 마지막에는 포항의 박태준까지 연대에 포함시켜 DJT로 확대개편하며 영남공략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러고서도 겨우 40만표가 안 되게 이겼던 거예요. 김욱 부류의 호남주의자들은 영남 포기하고 오히려 영남을 포위하는 데 집중하자고 주장했는데,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서만 가능한 소리입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 이후 영남을 향해 여러 가지 화합의 제스처를 취하며 지지기반 구축을 시도하죠.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 1212 및 518 사건 선고 공판 600.jpg▲ 1996년 8월 26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학살에 대한 사건 선고 공판이 진행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전직 대통령 초청 만찬 19991227.jpg▲ 1999년 12월 27일 청와대, 김대중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을 초청하여 만찬을 했다.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전두환-노태우 사면입니다. 여러 가지로 논란이 많고 아쉬움이 큰 일이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라는 명분을 내세워 김영삼으로 하여금 둘을 사면하게 만들었죠. 

5,6공 군사정권의 책임자였던 둘을 사면함으로써 과거와의 화해를 천명하는 동시에, 대구경북 주민들의 표심을 포용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던 셈입니다. 여기에 구미에서는 박정희기념관 건설을 돕겠다고 선언하면서 이 지역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역사적 화해를 추구하는 제스처를 취합니다.

TK 세력에 대한 배려는 김중권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전격적인 청와대 비서실장 기용으로 이어집니다. 울진에서 민정당으로 3선을 했던 구정치인 김중권을 최측근인 비서실장에 입성시켰을 뿐 아니라, 명실상부하게 정권의 실세로 만들었죠. 그리고 김중권의 향리인 울진에도 예산배정을 통해 많은 배려를 했습니다. 

덕분에 98년 지방선거에서 울진군은 경북에서 유일하게 민주당(당시는 국민회의) 후보가 군수에 당선되었습니다. 2년 뒤 총선에서도 김중권이 직접 출마해 16표 차로 낙선했는데, 봉화에서 산불이 난 데다 선거 3일 전 민국당 박영무 후보가 등록이 취소되는 사단이 터진 게 문제였습니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아마 당선되었겠죠. 

낙선 이후에도 김중권은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맡아 활약하고 대권후보 경선에도 출마하며 맹활약을 거듭합니다.

김대중 김중권 19980702.jpg▲ 1998년 7월 2일 청와대. 김대중 대통령이 국방부 국정과제 추진상황을 보고 받는 자리에 김중권 비서실장이 배석해 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은 영남지역의 의석 확보를 위해서, 지금으로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무리수도 동원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대거 탈당해 국민회의에 입당했는데, 이때 영남권에서도 탈당자들이 속출합니다. 여기에 당시 이인제가 이끌던 국민신당을 국민회의에 흡수시키죠. 

재미있는 것은 영남에서 한나라당을 탈당하거나 국민신당 흡수를 통해 국민회의에 합류한 정치인들의 차이입니다. 국민신당은 서석재(부산 사하갑), 김운환(부산 해운대기장갑), 한이헌(부산 북강서을) 등의 의원들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가 YS에 의해 발탁된 사람들입니다.

반면 TK에서는 12·12의 주역 중 하나이자 민정당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한 권정달(경북 안동을)을 데려옵니다. 여기에 5공 시절 관세청장을 지낸 장영철(경북 군위칠곡)을 영입하죠. TK에서는 5공 출신 인사들을 영입하고, PK에서는 YS계열 인사들을 영입해 양쪽의 표심에 호소하는 방책을 쓴 것입니다. 

또한 하나회 출신의 엄삼탁 전 병무청장을 대선 전에 영입해,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의 의원직 사퇴로 무주공산이 된 대구 달성 보선에 출마시킵니다. 이때 박근혜가 나가서 엄삼탁을 꺾고 정치에 나서게 되었다는;;

위와 같은 모든 액션들은 ‘동진정책’이라는 모토로 포괄될 수 있습니다. 

당시 민주당과 청와대 안에서는 영남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습니다. 

YS계열 세력과의 역사적 화해를 통한 민주대연합론으로 나갈 것이냐? 직접 TK부터 공략하는 동진정책을 취할 것이냐? 라는 명제를 두고 벌인 논쟁에서 김중권은 후자를 주장했고 그것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채택이 되었죠. 

돌아보면 아쉬운 결정입니다. 

TK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YS계열과의 화해와 연대를 통해 PK를 민주당의 지지기반으로 포섭하려 했다면, 오히려 서부벨트에 PK가 가세해 TK를 포위하는 구도를 그릴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이때 노무현 대통령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영남공략을 돕기 위해 자신을 던지게 됩니다. 

민주당이 PK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려는 시도는 노무현이 1999년 1월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시작됩니다. 1998년 7월 가카가 의원직을 사퇴하고 도망가면서 비게 된 종로에 입성했지만,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던 것은 많이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때 정균환(송파병에서 김을동에게 패한 그 정균환입니다;;) 당시 국민회의 사무총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 ‘동남지역발전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배려를 해줍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이 위원회를 기반 삼아 부산지역의 민원을 해결하고 표심을 끌어 모으는 노력을 쌓아올렸죠. 

그러다 옷로비 사건 등이 터지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옛 지역구인 중-동이나 서면 같은 부산 한가운데는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고, 결국 북강서을로 옮기게 됩니다. 부산에서 가장 낙후된 도농복합 지역구였고, 과거 김해군의 일부였기 때문에 고향사람으로 다가갈 수도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벽보 노무현.jpg▲ 2000년 4월 13일에 치러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북강서을에 출마한 노무현 후보 벽보
 
이와 같이 영남공략을 위한 여러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끝내 김대중 대통령은 영남의 문을 여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자서전에서 “믿었던 장수들이 다 낙선했다... 험난한 앞길을 생각하니 참담했다”고 씁쓸한 어조로 술회했을 만큼 김대중 대통령은 아쉬움이 컸던가 봅니다.

<다음에 계속>

* 필자인 정빈나씨는 스스로를 “동양철학과 신학을 함께 공부하며 사는 2002년산 노빠”라고 소개합니다. 본지 고일석 편집국장은 정씨에 대해 “정치 근현대사를 꿰고 있고, 정치인 수백 명의 내력을 별도의 참고 없이 일필휘지로 써내려갈 수 있는 놀라운 덕력을 가진 ‘최고의 정덕(정치 덕후)’으로, 정치적 고비와 사건이 있을 때마다 마치 데이터베이스와 같이 깊이 있는 해설을 내놓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저작권자ⓒ광화문시대를 여는 새언론 NewBC & news.newbc.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94933

댓글1
  •  
  • 노빠가어때서
    • 이렇게 좋은 기사에 댓글이 없다니. 영광입니다.
      항상 좋은 기사, 잘 보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승하세요
    • 0
 
 
 
 
 
  • 주식회사 엠아시아 |  설립일 : 2017년 4월 16일  |  대표이사 : 김형석  |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8길 34, 오피스텔 820호 (내수동)
  • 미디어등록번호 서울, 아04596 등록일자 2017년 7월 3일, 발행인 김형석, 편집인 권순욱
  • 사업자등록번호 : 247-88-00704  |  통신판매신고 : 제2017-서울종로-0685호
  • 대표전화 : 02-735-0416 [오전 11시~오후6시 / 토, 일, 공휴일 제외(12시~1시 점심)]  |  master@newbc.kr
  • Copyright ⓒ http://newbc.kr. All rights reserved.
광화문시대를 여는 새언론 NewBC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