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기획연재] 너희가 민주당을 아느냐? 새천년민주당 창당과 전국정당화로의 도전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기획연재] 너희가 민주당을 아느냐? 새천년민주당 창당과 전국정당화로의 도전

지지자라면 알아야할 민주당史 (7) 김대중의 집권과 16대 총선①
기사입력 2017.12.22 15:34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참여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초, ‘토씹새격문 : 한나라당편’이라는 글로 대한민국 정치권을 들었다 놨던 정빈나씨(당시 필명 ‘2004년 척결’)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작성했다는 ‘민주당의 역사’ 시리즈를 새롭게 손봐서 뉴비씨에 연재한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가 ‘민주당의 정통 역사’라 평가한다는 정씨의 이번 연재물은 민주당 당맥의 역사적 연원부터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과 16대 총선(노사모 탄생의 계기가 된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 낙선이 있었던 그 선거)까지를 다룬다. [편집자주]

- 목 차 - 

1. 민주당 당맥의 역사적 연원 : 고립과 모색
2. 1991년 야권통합과 14대 총선 : 첫번째 덧셈
3. 1993~1995년까지의 민주당 ①
4. 1993~1995년까지의 민주당 ②
5. 김대중의 정계복귀와 15대 총선 : 패배는 승리의 어머니
6. 분당 이후의 꼬마민주당
7. 김대중의 집권과 16대 총선 ① : 새천년민주당 창당과 전국정당화로의 도전
8. 김대중의 집권과 16대 총선 ② : 민주당 영남공략의 역사
9. 김대중의 집권과 16대 총선 ③ : 민주당, 전국정당화의 첫발을 떼다

***

7. 새천년민주당 창당과 전국정당화로의 도전

우여곡절 끝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과 국민회의였지만, 새로 출범한 ‘국민의 정부’는 공동여당인 자민련과 힘을 합쳐도 121석(국민회의 78석 + 자민련 43석)밖에 되지 않는 소수 정권이었습니다. 

취임 첫날부터 국회에서 김종필 총리 인준동의안이 한나라당의 불참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했고, 두 번째로 표결처리를 시도했지만 한나라당은 백지투표로 대응합니다. 

이는 대선결과에 대한 정치적 불복이기도 했지만, 또한 당시 한나라당의 불안했던 내부사정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조순 한나라당 총재를 비롯한 지도부는 반란표가 쏟아져 김종필 총리 인준이 통과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우려했던 것이지요. 

여당에서 야당으로 추락한 상황에서 여당생활에만 익숙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동요하고 있었고, 대선을 치르면서 형성된 친이회창-반이회창의 역학구도도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19980302 국회 김종필 국무총리 인준 표결 진통.jpg▲ 1998년 3월 2일, 김종필 국무총리 인준을 위한 두 번째 표결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바로 이 점을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파고듭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무리수지만, 공동여당은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영입작업에 들어갑니다. 

1998년 지방선거에서 공동여당이 수도권 3개 단체장을 석권하며 압승을 거둔 것도 영향을 미쳤고, 정권 차원에서의 전 방위적인 압박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 집권 초반의 밀월기간 치러진 재보선에서도 의석을 챙겼고, 이인제의 국민신당이 국민회의와 합당을 선언하며 여권에 합류합니다. 

결국 국민회의는 78석에서 104석으로, 자민련은 43석에서 55석으로 몸집을 불리며 국민의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원내 과반수를 확보하는 데 성공합니다.
국무총리 인준 및 국회의장 당선 양당 축하 오찬.jpg▲ 1998년 8월 31일 전경련 회관에서 국무총리 인준 및 국회의장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국민회의와 자민련 양당 축하 오찬이 열렸다. 김종필 총리는 총리직 지명 후 ‘서리’를 때는데 장장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단독 집권이 아닌 공동 집권이란 항상 불안한 정치적 기반 위에 설 수밖에 없었고, 색깔과 체질이 엄연히 다른 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의 공조가 계속 유지되기는 어려웠지요. 

게다가 집권 2년차인 1999년부터 옷 로비 사건과 언론대책 문건 사건, 서상목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등이 연속으로 터지면서 국민회의는 안팎으로 흔들리게 됩니다. 

협소한 지지층과 여전히 원내 3분의 1 수준인 원내기반은 16대 총선 이후의 정권운영과 정권재창출에 심각한 문제점이 되고 있었습니다. 

김대중과 국민회의는 고민 끝에, 이처럼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고 2000년 16대 총선의 승리를 도모하려면 사회적 명망가들과 민주화 운동 세력, 각 분야의 전문가 집단을 한데 모아 당의 외연을 크게 넓히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국회 옷 로비 청문회.jpg▲ 1999년 8월 25일,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와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과 정형근 의원등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에서 ‘옷 로비’ 청문회가 열렸다.
 
1999년 7월 23일 국민회의는 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했고, 김대중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신당이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하는 개혁 정당’이 될 것임을 밝힙니다. 

역대 정권에서 바른 말 잘하는 여당 정치인으로 손꼽혔고, 14대 국회의장으로 날치기 근절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이만섭이 국민신당을 거쳐 당시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으로 있었습니다. 여당에 속해 있으면서도 강골의 정치인으로 손꼽혔던, 한국정치사상 가장 독특한 캐릭터의 정치인 중 하나인 이만섭에게 김대중은 신당창당의 책임을 맡깁니다. 

국민회의의 신당창당 작업은 집권여당의 프리미엄까지 더해져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서영훈 전 KBS 사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이재정 성공회대 총장, 386세대의 대표적 인물들이었던 임종석, 우상호, 이인영, 오영식, 송영길 등 학생운동권 출신들, 스타 검사 출신의 함승희와 노관규, 유명 방송인 출신의 정범구와 박용호, 곽치영 데이콤 사장, 김택기 동부그룹 부회장, 박상희 전 중소기업회장 등 기업인 출신, 전 대검 차장 이원성, 12.12의 영웅 장태완, 대한체육회장 김운용, 한나라당 의원 출신 김기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 민주당 통추 출신으로 한나라당에서 항명파동으로 제명당한 이미경 의원 등이 대거 신당에 참여합니다.

해가 바뀌어 2000년 1월 20일, 서울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새천년민주당 창당대회가 개최됩니다. 국민회의는 당 바깥에서 신당창당을 완료한 다음, 국민회의가 신당과 합당하는 방식의 신설합당을 통해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당시의 새천년민주당은 지금 돌아봐도 19대 총선의 민주통합당보다 인재풀에 있어서는 훨씬 우수하고 폭넓었다고 여겨집니다. 위에서 열거했듯이 각계각층의 여러 인물들을 광범위하게 흡수해 당의 외연을 크게 확대하는 데 성공했으니까요. 

물론 이념도 사상도 다른 사람들이 지역정당에 합류해 잡탕을 만든 데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만큼 다양한 인물들을 한데 묶어 하나의 당으로 만드는 지도력과 조직력이 분명히 존재했었다는 점은 눈여겨봐야 합니다. 

그것이 1인 지배체제에서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새천년민주당 창당.jpg▲ 2000년 1월 20일 김대중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창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이렇게 창당된 새천년민주당은 곧장 16대 총선에 돌입합니다. 총선을 앞두고 박원순 변호사를 필두로 한 총선시민연대가 출범해 사상 초유의 ‘낙선운동’ 캠페인을 띄우면서 총선정국은 급변합니다. 

자민련은 민주당의 총선연대와 낙선운동 개입설을 주장하면서 공동정권과 선거공조의 파기를 선언하고 야당으로 총선을 치르기로 합니다. 다시 한 번 충청권에서의 동정론을 불러일으켜, 김종필의 녹색바람으로 충청권을 뒤덮으려 한 전략이었습니다.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당시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이인제의 논산 출마로 충청권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던 상황에 대한 대응책이기도 했습니다. 

자민련은 이인제의 논산 출마가 자민련의 지지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민주당의 책략이라고 본 것입니다.

2000 총선 시민연대 발족 기자회견.jpg▲ 2000년 1월 12일 2000년총선시민연대 발족 기자회견에서 박원순(오른쪽) 상임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2000 총선 시민연대 화보집 표지.jpg▲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활동 사진들을 모아 시민의신문에서 출판한 화보집 ‘4·13 유권자 혁명’의 표지.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은 총선을 개혁 대 수구의 구도로 급격히 재편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수도권에서 낙선운동은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합니다. 낙선운동 대상으로 삼은 86명 중 59명이 낙선합니다. 수도권에서는 22명 중 20명, 충청-강원에서는 23명 중 18명, 호남에서는 8명 중 6명이 낙선하며 낙선운동의 위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낙선운동은 시민이 나서서 정치권의 물갈이를 선도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던 동시에, 선거 구도를 공약과 정책이 아닌 개인전 성격으로 만들었다는 한계도 노출합니다. 

보수적인 정치학자들(故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 등)은 16대 총선의 낙선운동을 정권차원의 포퓰리즘적 동원이라고 일축하기도 하지만, 시민운동의 역사에 한 변곡점이 된 계기임은 분명합니다. 

여기에 선거 3일 전, 분단 이후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개최라는 메가톤급 이벤트가 터졌습니다.

4월 13일 총선 당일 오후 6시, 민주당은 출구조사에서 한나라당을 꺾고 제1당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민주당사에서는 환호성이 터진 반면, 한나라당에는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회창의 개혁공천으로 김윤환, 이기택, 신상우, 김광일, 조순 등의 정계 장로급 중진들이 대거 낙천 당해 당을 떠나 민국당을 창당하기에 이른 소위 ‘대학살’ 공천의 후유증이 이렇게 나타나는가, 낙선운동의 폭풍이 수도권을 뒤덮은 탓에 이렇게 된 걸까 싶었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개표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민주당 지도부의 얼굴은 굳어져만 가고, 상황판에 걸린 당선자의 이름 옆에 연신 꽃을 달아주는 이회창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16대 총선 결과 한나라당 원내 제1당 유지.jpg
 
16대 총선 투표율 57.2%로 사상 최저.jpg
 
분명 민주당은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적을 냈습니다. 오늘날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수도권에서 강한 정당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민주당이 경기와 인천까지 포함한 수도권 전체에서 한나라당을 꺾고 승리한 것은 16대 총선이 처음이었습니다. 

16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경기도에서 40%의 득표율로 22석을 얻으며 39%에 18석을 얻은 한나라당을 누릅니다. 인천에서도 44%의 득표율로 6석을 획득했고(한나라당 41%에 5석), 서울에서는 45%에 28석을 차지하며 완승합니다.(한나라당 43%에 17석) 

게다가 충청권에서도 30% 이상의 득표율로 8석을 차지하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습니다(14대 4석). 역대 선거에서 불모지 중의 불모지로 꼽혔던 강원도에서도 민주당은 36%의 득표율로 38%의 한나라당을 바싹 추격했고, 의석수에서는 오히려 5석으로 한나라당보다 2석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문제는 영남이었습니다.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영남이었습니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벽보.jpg▲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거리벽보를 살펴보는 시민들.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jpg▲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 현장
 
<다음에 계속>

* 필자인 정빈나씨는 스스로를 “동양철학과 신학을 함께 공부하며 사는 2002년산 노빠”라고 소개합니다. 본지 고일석 기자는 정씨에 대해 “정치 근현대사를 꿰고 있고, 정치인 수백 명의 내력을 별도의 참고 없이 일필휘지로 써내려갈 수 있는 놀라운 덕력을 가진 ‘최고의 정덕(정치 덕후)’으로, 정치적 고비와 사건이 있을 때마다 마치 데이터베이스와 같이 깊이 있는 해설을 내놓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저작권자ⓒ광화문시대를 여는 새언론 NewBC & news.newbc.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73641

댓글1
  •  
  • grteresa
    •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 1
 
 
 
 
 
  • 주식회사 엠아시아 |  설립일 : 2017년 4월 16일  |  대표이사 : 김형석  |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8길 34, 오피스텔 820호 (내수동)
  • 미디어등록번호 서울, 아04596 등록일자 2017년 7월 3일, 발행인 김형석, 편집인 권순욱
  • 사업자등록번호 : 247-88-00704  |  통신판매신고 : 제2017-서울종로-0685호
  • 대표전화 : 02-735-0416 [오전 11시~오후6시 / 토, 일, 공휴일 제외(12시~1시 점심)]  |  master@newbc.kr
  • Copyright ⓒ http://newbc.kr. All rights reserved.
광화문시대를 여는 새언론 NewBC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