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논쟁으로 바라보는 한국경제(6) 대우그룹 해법과 BIFC 해외 비밀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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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바라보는 한국경제(6) 대우그룹 해법과 BIFC 해외 비밀계좌

강신홍 시민기자의 ‘알기 쉬운 현대 한국 경제 이야기’
기사입력 2017.12.11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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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시절 정치칼럼 전문 사이트 서프라이즈와 노무현 대통령 개인 홈페이지(노하우)에서 ‘꺼벙임다’라는 닉네임으로 경제관련 글을 꾸준히 올렸던 강신홍씨가 예전에 썼던 글들을 현재 시점으로 일부 수정해 뉴비씨에 기고하겠다고 알려왔다.
강신홍 시민기자는 “다른 부분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경제는 연속되고 연결되는 것이어서 박정희의 경제부터 IMF외환위기, 대중경제론, 경제민주화, 재벌문제까지 같은 뿌리를 두고 살펴 봐야한다”며 주요 논쟁들을 중심으로 경제 이면의 문제와 설명들을 이어 나가겠다고 한다.
‘논쟁으로 바라보는 한국경제 (부제 : 알기 쉬운 현대 한국 경제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강신홍 시민기자가 올릴 이번 시리즈 글은 총 14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주]
 
논쟁으로 바라보는 한국경제 (부제 : 알기 쉬운 현대 한국 경제 이야기)

6. 대우그룹 해법과 BIFC 와 해외 비밀계좌 
7. 뮤추얼펀드와 해지펀드 그리고 사모펀드 논쟁(타이거펀드, 칼라일과 한미은행, 론스타와 외환은행, 그리고 이명박과 맥쿼리) 
8. 진정한 CEO의 가치는 무엇인가?(옥시 신현우, 현대건설 이명박, 킴벌리클락 문국현) 
9. 주주가치 이론과 대안연대 이론(장하성 과 장하준 누가 옳은가?) 
10. LG카드와 카드채 논란 
11. 미국 발 주택 모기지 논쟁 
12. 경제민주화 논쟁(경제민주화의 모체는 DJ의 대중경제론, 우파의 경제와 좌파의 경제) 
13.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그리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14. 양극화 하는 한국경제 – 중소기업 해법은 무엇인가?

***

6. 대우그룹 해법과 BFC 해외 비밀계좌

김우중은 정치적 희생양인가 대마불사를 노리는 국제 사기꾼인가?

origin_한자리에모인대우맨들.jpg▲ 2012년 3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립4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옛 대우맨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34조 이상의 국고 손실을 끼친 자들의 항변

지금은 사라진 대우그룹(大宇, Daewoo Group)은 1967년 김우중이 대우실업을 모태로 설립했다. 1999년 한때는 삼성그룹을 뒤로하고, 대한민국 재계서열 2위를 지켜왔던 대한민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인 재벌이었다.

섬유·무역·건설·조선·중장비·자동차·전자·통신·관광·금융 등 여러 사업부문을 두었으며, 1993년 세계경영 전략 채택 이후 글로벌 우량기업으로 발돋움하는 듯 했으나. 외환위기와 차입에 의한 확장경영에 따른 막대한 자금난을 겪고, 1999년 10월부터 워크아웃에 돌입한 후 그룹 해체를 맞게 된다.

김우중과 대우그룹은 철저하게 박정희 경제의 분신이었다. 지금은 비밀이 해제된 CIA 보고서에 따르면, CIA는 김우중 회장을 언급하며 “대우의 성공이 박정희 대통령과 김 회장의 각별한 관계에 따른 개인적 도움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CIA가 언급한 각별한 관계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우중 회장의 선친이 대구사범학교 교사를 지내면서 박정희가 그 제자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이다. 

김우중은 그룹 성장에 있어 철저하게 내수 보다는 차입에 의한 회사 설립과 수출 위주의 경영을 하는 박정희 경제체제의 신봉자이자 박정희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기업인이었다.

지난 2014년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직접 대우그룹 해체에 대해 스스로의 변명과 정치적 음모를 주장하는 책이 출간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박정희의 혜택과 보살핌으로 ‘재개 빅3’의 반열에 올랐던 그가, 그룹이 해체된 지 15년 만에, 대우그룹의 몰락 원인은 DJ정부의 기획 해체라는 주장을 하였다.  

김우중이 갑작스런 DJ정부의 기획 해체를 주장한 이유에 대해, 박정희의 열렬한 지지자이며 철저하게 박정희 경제의 추종자였던 그의 배경을 분석해 볼 때,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정부의 출범에 기대어, 부활 프로젝트를 가동됐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자신에게 부과된 추징금 17조9253억원에 대해 “대우에 내린 판결이 헌법 정신에 어긋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대우그룹의 구조조정에 정부가 지원한 금액은 1999년도와 2000년도에만 34조라고 한다.

정부와 관련 금융기관에서는 34조를 들여 채권을 소각하거나 감자를 한 후 주식으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손실을 털어낸 후, 다른 기업에 매각하여 회수한 돈이 7조 정도이니, 대우그룹의 부실 때문에 약 27조를 국민의 세금으로 날린 셈이다.

물론, 정부의 지원 자금 외에 대우계열사의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한 개인이나 민간 법인의 손해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민간의 손해를 별도로 하고 대우 때문에 날린 국민의 세금은27조를 훨씬 상회한다.

대우중공업의 조선 부분인 대우조선해양은 2000년대 잠시 호황을 겪기도 했으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변곡점으로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 조선업 경기의 악화로 현재까지 존폐의 기로에 놓여있으며,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에만 13조의 구조조정자금이 투입되었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그룹이 무리한 인수로 4조 이상의 구조조정자금이 투입되는 등, 대우그룹의 부실로 인한 피해는 상상이상으로 크다. 민간 부분까지 합하면 아마 100조 이상일 거라는 분석도 있다.

대우그룹에 겉으로 드러난 부채만 70조에 가깝고, 그 부채 중 일부는 탕감하고, 정부에서는 40조 정도의 구조조정 자금을 투입했는데, 대우 그룹은 결국 망했으며 몇 개의 회사를 제외하고는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가령, 어떤 사업자가 100억의 부채가 있는데 90억원을 탕감해조고 50억을 더 투자하여 주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대부분의 회사는 살아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대우는 망했다. 대우의 계열사를 인수한 회사들도, 인수한 대우의 자산들 때문에 망하거나 망해가고 있다.

당시 대우그룹 계열사가 41개였다. 부실부문을 털어내고 부채도 조정해주고 건실하게 한 다음 매각한 사업부분이나 회사 몇 개만 겨우 생존했을 만큼 대우의 계열사들은 지극히 부실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국민의 세금과 민간의 피해까지 일백 조 가까이 손해를 끼친 사람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김대중 정부의 기획해체라고 음모론을 들먹이고 있다. 그들의 양심이나 후안무치를 거론하기 전에 사회가 그들을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 결과라 생각한다.

이들이 아직 여전히 활개 치는 이유는, 사실을 왜곡하는 이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언론들이 있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일이라면 자기들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세력이 우리 주변에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그들은 기획해체를 주장하기 전에 국민들에 용서를 빌고 사회가 이들을 다시 심판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19940204 김영삼 대통령 대우자동차 방문.jpg▲ 1994년 2월 4일 김영삼 대통령이 부평의 대우자동차를 방문하여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의 보고를 청취하였다.
 

구조조정 자금은 왜 필요하고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가?

왜 정부가 망하는 기업에 국민의 세금으로 구조조정 자금을 투입하여야 하는지에 의문을 가지는 국민들이 많이 있다.

회사는 지급불능 상태인 Default 상태가 되면, 회사를 폐업시키거나 잔존가치를 따져 법정관리를 시킨다. 이 과정에서 회사 자산과 부채를 정리하여, 채권자들끼리 채무조정을 하게 하여 회사를 회생시키거나 청산시킨다.  

그러나 대우 같은 당시 넘버 2의 재벌그룹을 폐업시키게 되면, 대우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 중 담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은행들이 부도가 나게 된다. 은행뿐만 아니라, 대우에 관련된 채권을 산 증권사나 공적 연기금, 그리고 개인들도 많은 피해를 볼 것이다.

대우가 망한 IMF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식 투자신탁 상품이 유행하였고, 당시 투자신탁 상품들은 실현이 안 된 이익까지 중간 환매자들이 가져가게 되는 구조였다.

당시 대우 채권을 부도 처리하면 환매하지 않고 펀드에 남아있는 소비자들이 중간 환매자가 가져간 이익까지 남은 자산으로 처리해야 했기에, 채권시장에 펀드런이 발생하여 금융시장에 급격한 혼란을 줄 상황이었다. 펀드런이 발생하면 97년 말의 IMF 외환위기 이상의 경제위기가 또다시 예상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대우 사태 초기의 대책으로, 관계된 채권자들이나 주주들에게 채권비율을 조절하여 감자나 원금 일부 탕감을 하고 추가 자금지원을 하여 회사가 생존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대우에 투자한, 채권자들이나 주주 그리고 금융기관들의 입장에서도 대우를 그냥 부도 처리하면, 채권이나 주식 등 투자한 금액 대부분을 손해 보기에, 많은 부분을 감자하거나 탕감하고 일부 운영자금을 재투자 하더라도 회사를 정상화 시키려 한다.

이때 국가가 직접 투자 할 수 없으니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같은 공적 은행을 통해 증자를 하거나 새로운 운영자금을 빌려주게 된다. 그러나 정도를 넘게 되면 경영진까지 교체하고 정부자금을 투입하여 정상화한 후 3자 매각을 통해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정책을 사용하게 된다.

전부 손해를 볼 것이냐? 아니면 손해를 줄이기 위하여, 마중물과 같은 추가 자금 지원을 통해 살릴 것이냐? 이런 판단의 근거가 구조조정자금 투입의 근거가 된다.

19980124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접견.jpg▲ 1998년 1월 24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인수위 당선자실에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을 만나 국가의 비상경제문제에 대해 의논하였다.
 
대우그룹의 역사와 몰락

김우중은 1967년 ‘대우실업’이라는 소규모 섬유 무역업체를 창업하였다. 서두에서 언급한 CIA 보고서에서 보듯이, 박정희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에 따른 개인적 도움의 결과로 성장하였다.

철저하게 내수 보다는 차입경제에 의한 수출 위주의 경영을 하는 박정희 경제 모델을 따라, 1970년대의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환경아래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또한 대우는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대한민국 서열 2~3위를 다투는 재벌 기업으로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대우 그룹은 (주)대우의 출범과 함께 당시 박정희 정부의 도움으로 새한자동차의 인수, 대우전자의 가전사업 진출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단기간 내에 현대, 삼성, 럭키금성(LG)과 함께 대한민국 4대 재벌 기업군으로 성장한다.

1980~1990년대 우리나라 재벌그룹의 성장역사는 곧 베끼기의 역사이었다. 95년 타임지에 표지기사로 한국의 재벌들의 문어발식 기업 확장과 베끼기 성장 문화가 큰 화두가 되었다.

타임지에 소개된 내용은 이런 내용이었다. 

“한국 재벌기업에 제품을 팔기는 아주 쉽다. 현대, 삼성, 대우, LG중 한 기업만 중점적으로 공략하면 된다. 그러면 나머지 3개 기업은 그것이 무엇인지? 자기에게 필요한지? 살펴보지도 않고, 돈 보따리 싸 들고 와서 팔라고 사정사정한다.  처음 판 재벌에 손해를 보고 팔았다 하더라도 나머지 재벌들에게 비싸게 받고 팔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그 당시 증권거래소 업무를 도우려 온 미국 직원에게서 그런 기사를 확인하고 매우 부끄러웠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대우그룹이 단기간에 급속히 성장을 하였기에 대부분의 사업분야에서 후발기업이었다는 점이었다. 후발기업으로, 국내 다른 재벌그룹의 기업들과의 출혈 경쟁에서 기술력과 수익성의 한계를 느낀 대우는 세계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기술이나 경쟁력에서 밀려난 대우에게 세계시장은 결코 녹녹하지 않았다. 선진국이나 기존시장에는 접근할 수 없는 대우에게는 냉전체제의 완화가 도래한 시점에 동유럽 및 공산권 국가의 리스크 많은 신규시장에 진출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한 환경에서 김우중과 대우는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하고, 무역상사이던 (주)대우가 구축한 세계무역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주), 대우중공업(주), 대우전자(주)가, 선진국들이 쉽게 진출하지 않은 옛 공산권 국가와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개발도상국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본격적인 세계경영을 시도하였다.

대우가 당시 내세웠던 ‘세계경영’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하여 처음부터 현지 공장을 설립하기 보다는, 문제 있거나 자금이 어려운 기업을 저가에 인수 합병하거나 투자를 하여 경영권을 확보하고, 단기간에 사세확장을 꾀하는 방법이었다.

실제로 대우가 진출을 시도한 개발도상국가의 정부에서는 자국의 경제 활성화 목적에서 그런 대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기에, 세계화 초기의 대우의 사업 확장은 더욱 쉽게 이뤄질 수 있었다.

대우는 세계경영으로 철저히 현지화를 추구하여, 초기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97년 다가올 경제위기를 예상하지 못하였고,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쌍용자동차(주)를 인수하고, 해외에도 자동차 폴란드 현지공장을 인수하는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대우는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삼성을 제치고 잠시나마 재계서열 2위까지 뛰어오른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경기침체의 장기화가 진행되고 동남아 외환위기가 발생함에 따라, 세계 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대우의 입지는 크게 흔들렸다.

동유럽과 개발도상국가 위주로 판매망을 확대해온 대우자동차의 부진이 거듭 되었으며, 국내에서 조달한 자금의 이자율이 20%대로 올라감에 따라, 국내기업이나 해외기업에 대한 투자로 인한 금융부담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 이상이 되었다.

경영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추진한 97년 쌍용자동차의 인수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외형확대의 초점을 맞추어 경영해 오다 보니 당시 정부가 요구했던 구조조정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19980327 김종필 국무총리 대우 신차 마티즈 발표회 참석.jpg▲ 1998년 3월 27일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KOEX) 대서양관에서 열린 대우자동차의 경승용차 ‘마티즈’의 신차관람회에 김종필 국무총리, 김우중 대우그룹회장등 4천여명의 초청인사들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19990629 예지 부젝 폴란드 총리 경제단체장 주최 오찬.jpg▲ 1999년 6월, 김종필 총리의 초청으로 27일 방한한 폴란드 예지 부젝 총리가 2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김상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우중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김재철 한국무역협회 회장, 박상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등 경제단체장이 주최하는 오찬모임에 참석하였다.
 
19990825 김대중 대통령 정 재계 및 금융기관 간담회.jpg▲ 1999년 8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정·재계 간담회에 참가한 김우중(오른쪽) 당시 전경련 회장과 이헌재 초대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위원장.
 
김대중 정부의 대우 처리

1998년 말부터 대우의 자금 위기설에 따른 채권 불능 사태가 발생하였다. 일본의 노무라 증권에서 ‘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대우에 이상 징후를 느낀 금융권들은 본격적으로 자금회수에 돌입하였다. 만기가 돌아온 여신들은 연장을 하지 못하자, 단기 여신에 의존하여 세계 공장을 인수하던 대우의 유동성에 급격하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당시 정부에서는, 대우처럼 부실한 재벌그룹들에 대한 빅딜과 구조조정을 제안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5대 재벌들은 스스로 구조조정 할 수 있는 자금과 경영 능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 하에 과잉 생산설비를 자체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빅딜(Big Deals)’을 유도했다. 재벌간 사업을 맞교환 하여, 설비에 대한 구조 조정도 하고 생산성을 높여 IMF 금융위기를 극복해 나가라는 것이었다.

정부는, 김우중에게 충분한 시간을 더 주어,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를 교환하여 각각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을 권장하였으나, 두 재벌그룹의 욕심 때문에 빅딜에 실패하였다.    

1999년 여름에 접어들면서, 김우중은 대우와 GM과의 협상에 그룹의 운명을 걸게 된다. 협상 초기에는 GM의 투자 정도로 생각한 김우중은 헐값으로 대우차와의 경영권을 넘기라는 GM의 요구를 거절했으나, 실사를 마친 GM에서 경영권인수도 포기하며, GM과의 매각협상에 실패한다.

기대했던 GM의 투자협상이 물건너 가자, 대우는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금난이 가중되던 대우는 뒤늦게 자산매각에 뛰어 들어, 힐튼호텔 매각 등을 성사시키기도 하였지만, 1999년 3월에는 이미 부채 비율이 무려 400%를 훨씬 넘은 상태이어서, 그룹 자체적으로는 수습이 어려운 지경까지 내 몰리게 되었다.

99년 7월 김우중은 개인재산 1조3천억원을 포함해 10조1천억원에 이르는 담보를 채권은행에 내놓겠다는 극약처방을 제시했으며, 채권단은 대우에 4조원의 추가 자금 지원을 결의하였으나, 4조원을 가지고 대우의 자금위기를 극복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결국 대우는 1999년 8월 대우그룹 12개 주력 계열사들이 채권단 관리 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함으로써 그룹 해체의 길로 접어든다. 99년 11월에는 김우중 회장을 비롯한 계열사 사장단이 모두 물러나 대우그룹은 완전히 공중분해 되는 운명을 맞았다.

지난 1967년 창업 이래 32년간 대한민국에 경쟁성장의 견인차로, 박정희의 차입경제와 중화학공업육성 경제정책의 원조 경제모델 역할을 해오던 기업 중 하나로서, 1993년 세계경영을 선포한지 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origin_김우중전회장대우그룹창립행사참석.JPG▲ 2012년 3월 22일 오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서울 종로구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대우그룹 창립4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기념공연을 바라보고 있다.
 
세계경영의 원천은 분식회계

대우에는 확실히 내세울 수 있는 1등 제품이 없었고, 첨단신제품의 개발 및 생산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막대한 이윤을 거둔 사례도 없었다. 단순히 차입만으로 급격히 커진 외형을 떠받치기에는 내부구조가 취약하다는 게 시장의 우려였다. 아울러 주로 외부 차입에 의존해 설립했던 해외사업장중 제대로 이익을 내는 곳이 별로 없었다는 것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했다.

박정희식 차입경제와 중화학공업 중심의 재벌그룹 육성이란 경제모델 과 ‘외화내빈’의 재벌그룹으로 대표되는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의 영욕을 함께 한 뒤 대우그룹은 해제 되었다.

사실, ‘대우호’의 좌초는 98년부터 감지됐다. 110억여 달러에 달하는 대우그룹의 해외투자는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엄청난 부담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왔지만 대우그룹은 ‘세계경영’을 포기하지 않고 국내외 사업장들의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차입금을 계속 늘려갔으며 결국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대우그룹이 세계경영을 내세우며, 차입경영을 할 수 있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대우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과 이를 만든 관치금융의 정부이다. 세계적으로 차입경영에 성공한 개별기업은 간혹 보이지만, 대우처럼 기업집단 전체가 차입경영으로 성공한 예는 없다. 

그렇다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차입경영을 할 수 있도록 자본의 400%가 넘는 돈을 빌려준 이유는 무엇인가?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규모는 50조에 달하는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그러나, 이는 3년간의 분식회계의 합계이고, 훗날 참여연대에서 밝힌 분식회계 총 규모는 29조 정도이다.

대우의 밝혀진 부채 60~70조는 29조의 분식회계가 없었다면, 결코 빌려줄 수 없는 돈이고, 결국, 분식회계가 없었다면, 세계경영을 내세우며 차입경영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검찰이 발표한 대우의 회계분식을 수법을 보면, 30여년간 재무 일을 해온 필자가 보기에는 온갖 저질스러운 수법을 망라한 심한 범죄라는 생각이다. 

재고자산을 과대 계상하고, 매출채권을 과대 계상하고, 공사관련 수익과 유형자산도 과대 계상하였다. 있지도 않은 재고를 가짜로 만들고, 진짜 재고는 재탕 삼탕으로 이용해 먹었다. 이미 팔린 제품이 재고도 둔갑하기 한다.

또한, 계열사나 관계사에 가장 매출을 일으키고, 매출서류도 가짜로 작성하였다. 선수금으로 받은 제조설비 자금을 기술수출 매출로 가장 하였다. 건설과 중공업에서는 공사 예정원가를 낮게 책정한 다음 공사 진행률을 과대 계상하는 방법으로 공사 수익을 크게 하였다. 

가공 유형자산을 만들기도 하고, 차입금을 은폐하기도 하였다. 

대우의 백화점식 분식회계의 최정점은 비자금 조성을 위해 영런 런던에 세운 BFC(British Finance Center)이다.


BFC(British Finance Center) 사기

BFC는 ㈜대우가 80년대 리비아 공사대금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김우중과 측근 들만이 아는 역외 비밀계좌이다. 공사 후에도 계속 비밀계좌로 존재하며 국내 재산의 해외도피 및 비자금 조성처로 불법 관리해왔다고 한다.

BFC의 역할과 규모가 비대해지기 시작한 것은 93년 대우그룹이 ‘세계경영’을 표방하면서이다. 김 전 회장은 현지 금융기관에서 돈을 차입, 10여개에 달하는 해외 무역법인, 자동차 생산법인 및 판매법인 등에 투자했다.

하지만 무리한 투자로 해외 차입금이 60억~70억달러에 이르러, 상환 압력이 거세진 데다, 그 시기가 IMF 직전이어서 더 이상 해외차입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김우중은 거꾸로 국내에서 조성한 돈을 해외로 송금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대우는 중계무역을 통한 수입대금으로 위장하여 BFC가 만든 유령회사 명의로 송금하는 전형적인 재산도피 방식을 택했다. 또한, 대우자동차에 들어와야 할 자동차 수출대금 15억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지 않고 BFC 계좌에 입금시켜 유용하였다고 한다.

이 돈이 누구의 감독·통제도 받지 않고 김우중 회장의 책임 아래, 기업의 정상적인 회계를 거치지 않고 운영된 점에 비추어, 상당부분이 비자금으로 빼돌려 져, 지금도 진행중인 베트남 사업과 같은 개인사업 등에 사용되었을 거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BFC를 통한 무리한 해외투자 및 해외금융차입이 대우 부도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origin_김우중전회장이말하는한국경제.jpg▲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2014년 10월 2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열린 신장섭 교수와의 경제학 콘서트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대우 몰락의 의미

대우는 박정희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에 따른 개인적 도움의 결과로 성장하였으며, 철저하게 내수 보다는 차입경제에 의한 중화학 공업 위주의 수출경영을 하는 박정희 경제 모델의 원조 실천 기업이다.

대우그룹은 1970년대의 경제성장 및 수출호조에 따른 환경아래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비록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지만, 그 당시 차입경영과 출혈수출로 인한 한국경제상의 재벌들에 내제된 외화내빈의 문제들을 그대고 안고 있었다.

박정희 경제모델은 부의 축적이라는 목표아래, 재벌기업을 육성하고 재벌에게 저리의 차관이나 시중금리의 반도 되지 않는 정책자금들을 지원하는 차입경영과 중화학공업 위주의 수출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중간재 산업이나 중소기업의 육성 없는, 중화학 위주의 수출 정책들은 수출을 하면 할수록 중간재 수입 등으로 수입이 더 증가하는 무역의 기형구조를 만들게 되었다.

출혈 수출과 이중가격제에 의한 보상과 같은 정부의 보호아래 성장한 재벌기업들은, 외화내빈으로 IMF 외환위기 같은 외부의 충격에 맷집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김우중은 대마불사와 원화환율 절하의 힘만 믿고, 세계경영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하였다. 그러나 다른 재벌과 비교해서도 후발기업으로 기술력이 뒤쳐지는 대우로서는, 선진국시장 보다는 소련의 공산주의 울타리에서 막 풀려난 동유럽과 개발도상국과 같은 신시장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차입경제와 차입경영, 허울뿐인 수출경제와 세계경영, 모두 모래 탑 위에 쌓아 올린 신기루라는 생각이다. 대우의 몰락은 차입경제와 수출만능주의의 박정희 경제의 몰락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쓰라린 경험이지만 한국의 재벌들은 대우의 몰락을 계기로 구조조정과 에 힘을 쏟게 된다. 이전보다 내부 회계도 투명하게 하고, 내실을 다지는 기반이 되었다. 그런 대우의 교훈을 통해 내실을 다졌기에, 2008년 미국의 모기지 위기에 따른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에도 큰 영향 없이 넘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김대중 정부의 음모를 주장하며, 대우그룹의 재건을 꿈꾸는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다. 그들이 다시 나서려면, 김우중 전 회장에게 추징금이나 내시고 망한 기업을 다시 재건하든지 말든지 하시라고 권고해 드리고 싶다.

그리고 몰락한 대우와 함께 박정희의 경제신화도 같이 몰락하였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되어, 후안무치 한 이들이 준동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다음회에 계속)

참고 문헌
대우 23조원, 꼬리 잡힌다  한겨레21 /2000. 7. 21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논란을 보며 IfsFOST/ 2015-08-26
대우그룹, 해체의 길로 들어서다  시사저널 박재권 기자/1999. 08. 05
'대우신화' 김우중의 흥망성쇠 돌아보기 한국일보/2014.08.24
대한민국 경제사 석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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