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논쟁으로 바라보는 한국경제(5) IMF 외환위기 이후의 금융구조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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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바라보는 한국경제(5) IMF 외환위기 이후의 금융구조 논쟁

강신홍 시민기자의 ‘알기 쉬운 현대 한국 경제 이야기’
기사입력 2017.12.0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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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시절 정치칼럼 전문 사이트 서프라이즈와 노무현 대통령 개인 홈페이지(노하우)에서 ‘꺼벙임다’라는 닉네임으로 경제관련 글을 꾸준히 올렸던 강신홍씨가 예전에 썼던 글들을 현재 시점으로 일부 수정해 뉴비씨에 기고한다. 강신홍 시민기자는 “다른 부분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경제는 연속되고 연결되는 것이어서 박정희의 경제부터 IMF외환위기, 대중경제론, 경제민주화, 재벌문제까지 같은 뿌리를 두고 살펴 봐야한다”며 주요 논쟁들을 중심으로 경제 이면의 문제와 설명들을 이어 나가겠다고 한다. ‘논쟁으로 바라보는 한국경제 (부제 : 알기 쉬운 현대 한국 경제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강신홍 시민기자가 올릴 이번 시리즈 글은 총 14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편집자주] 


논쟁으로 바라보는 한국경제 (부제 : 알기 쉬운 현대 한국 경제 이야기) 

- 목 차 -

5. IMF 이후의 금융구조 논쟁 
6. 대우그룹 해법과 BIFC 와 해외 비밀계좌 
7. 뮤추얼펀드와 해지펀드 그리고 사모펀드 논쟁(타이거펀드, 칼라일과 한미은행, 론스타와 외환은행, 그리고 이명박과 맥쿼리) 
8. 진정한 CEO의 가치는 무엇인가?(옥시 신현우, 현대건설 이명박, 킴벌리클락 문국현) 
9. 주주가치 이론과 대안연대 이론(장하성 과 장하준 누가 옳은가?) 
10. LG카드와 카드채 논란 
11. 미국 발 주택 모기지 논쟁 
12. 경제민주화 논쟁(경제민주화의 모체는 DJ의 대중경제론, 우파의 경제와 좌파의 경제) 
13.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그리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14. 양극화 하는 한국경제 – 중소기업 해법은 무엇인가?

***

5. IMF 외환위기 이후의 금융구조 논쟁
 
투자은행.jpg
 
투자은행(Investment Bank)와 상업은행(Commercial Bank).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외부로부터 금융정책의 변화를 겪게 된다. IMF와 맺은 협약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금융산업이 변화해야 할 당위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화의 중심은 역시 미국식 투자은행이다. 일본식 금융제도를 따라온 우리가 변화하는 세계 금융계에 적응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목적이다.

과거 박정희가 종금사를 세우며 모델로 삼았던 것도, 김영삼이 OECD에 가입하며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모델로 삼았던 것도 결국은 모두 ‘투자 은행’으로 귀결된다.

사실, 투자은행 이슈는 박정희와 김영삼 그리고 IMF 외환위기 이후의 금융구조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시대에도, 대형은행의 투자은행 변신을 위한, 발행업무에 대한 허가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투자은행이 무엇이고 투자은행에 대비되는 상업은행이나 소매은행(Retail Bank)의 정의와 구분에 대해서 우선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개인이나 기업고객을 상대로 예금을 받고 이 예금을 바탕으로 대출을 해줌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이를 상업은행(Commercial Bank) 혹은 소매은행(Retail Bank)이라 한다. 

주로 예금을 받아 자금이 필요한 곳에 대출해 주는 자금 중개 역할을 고유 업무로 수행하면서,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 상업은행이고, 일반 고객을 상대로 한다고 해서 소매은행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주요 은행은 대기업 업무를 주로 하는 산업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을 상업은행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반대로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은 고객으로부터 예금을 받지 못하는 대신, 스스로의 자본과 신용으로 대규모 자본을 조달한 후에, 기업이 발행한 채권이나 증권을 인수하는 증권인수업자(Underwriting House)를 지칭한다.

우리나라의 증권회사가 해당하며, 기본적으로 자체적으로 회사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발행업무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단기 금융시장 업무, 선물옵션·파생금융상품 업무, 투자신탁과 투자자문 업무, 부동산 관련 업무, 인수·합병(M&A)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투자은행의 주요 고객은 기업과 기관투자가들이다. 우리나라는 증권사가 투자은행의 역할을 하는데,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종금사와 증권사 그리고 투자신탁사들이 이런 기능을 나누어 수행하였다. 은행권에서는 주로 기업고객을 상대로 하며, 인수합병이나 투자 업무를 수행하는 산업은행이 투자은행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가 성장함에 있어 투자은행이 중요한 이유는, 기업활동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상업은행의 일반 대출과는 달리, 회사채 인수나 주식인수를 통해서 기업이 장기적인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직접적 창구가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상업은행은, 기업이 아닌 개인을 상대로 예금을 받고, 받은 예금을 기반으로, 개인에 대출을 해주고 일부는 기업에 대출을 해 주기 때문에 기업들의 다양한 경제활동을 지원하지 못한다. 상업은행에서 실행하는 기업의 대출은 기한이 있고, 관련된 이자가 있다.

또한 담보를 요구하거나 엄정한 신용평가를 통해서 대출이 나간다. 기업 입장에서는 원금과 이자까지 상환이 예상되는 안정적인 사업에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투자은행은 자체적으로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하여 대규모 투자자금을 모으거나, 기관투자가들로부터 투자 받은 자금으로, 개별 기업이 발행한 채권이나 증권인수의 방법 등을 사용하여 기업에 조달 하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기업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자금을 갚아야 하는 대출과는 달리, 주식발행이나 주식 매매 등과 같은 여러 방법으로 자금 조달 창구를 다양화 할 수 있어, 기업이 활성화 되고 경제가 더 많이 성장 할 수 있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격적으로, 신기술이나 마케팅에 투자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겨 국가 경제 발전에도 많이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은행.jpg
 

초기 투자은행의 변천

앞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투자은행은 영국의 머천트뱅크(merchant bank)에서 유래되었다. 머천트뱅크란 18세기 이후 유럽 각지에서 런던으로 이주해온 무역업자들이 어음 인수를 위해 설립한 영국 특유의 금융 회사이다.

20세기에 진입할 때까지, 베어링브라더스(현재 ING그룹에 인수되었음), 로스차일드와 같은 머천트뱅크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주류를 차지하며, 미국으로 진출해 미국의 투자은행이 만들어 지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영국에서 머천트뱅크는 외환위기를 겪으며 미국이나 유럽 대륙의 대형 금융회사에 대거 흡수되었다.

미국에서 투자은행이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세계 대공황 직후인 1933년 '은행·투자은행 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글라스·스티걸법’이 제정되면서이다.

당시 정치가들은 은행들의 과도한 주식 투자가 대공황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글라스·스티걸 법을 만들고, 예금과 대출 업무를 위주로 하는 상업은행과 기업이 발행하는 증권의 인수·주선 등 도매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투자은행으로 분리하여 운영하게 하였다.

그 동안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웰스파고,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시티은행 등이 상업은행이고, 반면에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모간스탠리 등은 대표적인 미국의 글로벌 투자은행들이었다,

1930년대의 대공황 이후 약세를 면치 못하던 투자은행들은, 전후 1950-60년대에 들어 베트남 전쟁과 복지정책 확충 과정에서 대규모 경기부양에 따른 주가 급등에 따라, 개인 중심의 주식 투자가 급증하고 Merrill Lynch 등과 같은 소매 위탁매매 중심 의 증권업을 주 업무로 하는 투자은행들이 성장해 왔다.

그러나, 70년대 오일쇼크 등으로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이에 따른 주식시장의 침체가 장기간 진행되자 본격적인 투자은행업무에 변화가 온다. 수익을 다변화하기 위하여, 신상품을 개발하고, 선물옵션과 같은 파생상품의 거래 포지션을 늘리고, 인수 주선업무, M&A와 벤처투자 등으로 업무 영역을 확대하게 된다.

또한, 1990년대 들어서는, 주식시장의 Black Monday 충격 등을 이겨내고 생존한 투자은행들이, 본격화된 자본시장의 성장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높은 성장을 이루고, 투자은행간 합병을 통한 대형화가 이어지게 되었다.  
 

21세기 자본시장의 변화

90년대 3저 호황을 바탕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과 IT산업 활성화, 연기금의 증시 유입 등으로 투자은행들은 IT산업과 신기술 중심으로 90년대 후반까지 빠른 상승세를 지속하게 된다. 

우리는 90년대 후반부터 이루어진 증권거래소로 대표되는 자본시장의 성장에 주목해야 된다.

기업금융에서 과거의 금융은 기업의 신용이나 시설을 담보로 한 대출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투자은행들은 기업이 발행한 채권이나 증권을 인수하는 증권인수업자(Underwriting House)의 형태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거나 주식매매를 대행해 주고받는 브로커리지(Brokerage)업무로 생존하였다.

그러나 90년대부터 파생상품이 활성화 되고, IT산업과 기술주 위주의 주식시장이 활성화 되며, 대형화된 투자은행들이 자본시장의 빠른 성장을 주도하였다. 주식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 M&A 시장 또한 성장하게 되고, 채권시장이 정크본드 시장까지 확대되며, 다양한 자본시장 업무를 바탕으로 투자은행이 더욱 성장하게 된다.

1999년까지 70여년 동안이나 ‘글라스·스티걸법’에 의해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업무 분리가 엄격하게 지켜왔었다. 

그러나 새로운 자본시장 변화가 이 둘의 업무를 허용하는 ‘그램·리치·블라일리법’이 제정되면서 더욱 번창하게 된다. 이제 투자은행이나 상업은행 또는 소매은행의 구분 없이 다양하게 금융의 업무 영역이 확대된 것이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를 겪으며, 투자은행은 상업은행과 합병하며 위기를 넘기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규제와 관치금융에 익숙했던 우리나라의 금융기관과 시스템이 구조조정과 변화의 필요에 직면하게 되었다.
 

규제와 관치 금융

우리나라 외환 위기의 출발은, 운영자금으로 사용해야 단기 자금들을 시설자금과 같은 장기적 부분에 사용한 일부 재벌 대기업들과, 그들과 연관된 금융 부문에서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경제 문제는 금융과 관련이 있다. 과거 우리나라가 겪은 외환위기와 후에 언급할 카드사태, 그리고 미국이나 외국의 경제위기 등도 모두 금융의 영역에서 출발하였다고 단정할 수 있다.

국가 운영자가 금융을 제대로 이해하고 운영하지 않는다면, 국가경제의 안정은 생각하기 어렵다. 

금융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다. 국가 경제의 피를 돌게 하는 심장 같은 존재이며, 국가 경제 전체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금융 산업의 인허가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영업에 대하여 각종 법제와 행정조치 등을 이용하여 규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동시에 규제의 변화가 금융산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이런 규제의 동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마디로 IMF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금융제도는 모든 것을 정부가 정하고 감독하는 관치금융이었다.

물론 정부가 금융기관을 통제한다고 해서 모두 다 관치 금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중립적인 감독기관이나 위원회 등을 통해, 원칙을 가지고 규제와 통제 운영을 하는 국가는 관치금융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원칙이나 법제화 없이, 즉흥적으로 정권의 필요에 따라 경제 법칙들에 반하는 규제나 통제를 하게 되면 관치금융이라 불리게 된다. 

우리나라 관치금융의 시초는 박정희이다. 당시 자본 축적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중화학 공업의 설비를 설치하려면 차입경제에 의존하여야 하고, 민간 금융기관이라면 적자 출혈수출을 하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산업자본을 만든다는 핑계로 산업은행 같은 국가 은행을 만들어 돈을 빌려 주는 방법을 사용하거나, 정부가 민간은행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그런 금융 정책을 사용하였다.

물론 출혈 수출하는 기업에게는 이중가격체제를 만들어 적자수출부분을 충당하게 하고, 금융기관이 부실해 지면 정부의 예산, 즉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한국의 금융구조와 투자은행

앞장에서 봤듯이, 우리나라 금융제도는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 구조조정 시까지 은행, 증권, 투신, 보험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금융제도를 취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일본식 금융제도는 투자은행 업무가 취약하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시대에는 영국의 머천트뱅크(Merchant Bank)와 미국의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을 모델로 종금사를 만들었고, 김영삼 정부가 OECD 진입에 따른 금융시장 개방을 앞두고 금융산업에 경쟁력을 유지하고자 투자금융사들을 종금사로 전환하여 기존 일본식 금융제도에 따른 약점을 극복하고 투자은행 업무의 경쟁력을 높이려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섣부른 시도들이 결국은 IMF 외환위기를 낳게 한 금융부실의 한 증거이다.
 
박정희 시대에는 정부의 지시나 통제에 따라 기업의 금융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재벌들은 시중금리의 절반 정도도 안 되는 시설자금 들을 받아, 기업군 소속의 다른 기업의 여신으로 사용하거나 부동산을 구입하는 등 국민들의 세금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자산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남용하였다.

당시에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주거래은행 제도를 두어, 조달된 돈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지 관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주거래은행들은 선단식 재벌그룹을 모두 감시·통제하기는 실질적으로 어려워, 형식적으로만 만들어진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원래의 목적대로 하자면 주거래 은행은 본래의 취지대로 해당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고, 기업신용과 경영정보의 관리에 대한 조정, 기업재무구조 개선 유도, 무분별한 부동산 취득 과 기업투자의 규제, 부실기업의 처리 등의 기능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 금융기관들은 관치금융에 익숙해져 있었다. 또한 이들 재벌기업의 감시 업무에 익숙한 전문가가 없는 은행으로서는, 형식적인 규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투자은행1.gif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

외환위기 이전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은 은행 중심이었다. 투자은행 업무에 취약한 상업은행과 소매은행 중심의 우리은행들이 시장의 법칙에 따라 금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관치금융에 익숙한 왜곡된 은행중심 금융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주거래 은행 제도도 재벌기업을 통제하거나 감시할 힘도 없었다. 그러한 시스템 안에서 경제성장이라는 명제를 앞세운 대기업들은 은행을 통해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중소기업들은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였다.

단순히 담보를 바탕으로 한 여신제공이나 하는 간접금융만 익숙했지, 기업이 직접 주식이나 채권을 발행하게 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직접금융시장이 제대로 운영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증권거래소와 증권사가 이런 역할을 하기는 하였으나, 자본시장이 성숙되지 않은 환경에서 한계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식 금융제도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투자신탁 제도와 선진국에 훨씬 못 미치는 뮤추얼 펀드와 같은 간접투자들이 은행중심의 금융제도 하에서의 빈약한 투자은행 업무의 GAP을 겨우 메우는 정도였다.

금융시장에서 기업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시장에 의한 기업 감시 기능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본시장이 성숙될 수 없으며, 기업들은 직접금융을 통한 자본조달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금융시스템 환경에서 IMF 외환위기에 직면하여 외부로부터의 금융권 구조조정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의 금융권 구조조정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 구조조정은 과잉인력, 과잉점포 등 은행경영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부실여신의 현재화를 시도하고 충당금 부족액을 추가 적립하게 하며, 부실한 유가증권의 처분을 강제화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부실자산 매각 등으로 자산의 건전성을 제고하였다.

이 과정에서 14개의 종금사가 강제 퇴출되고 10여개의 은행이 퇴출되거나 흡수 합병되었다.  

또한, BIS 비율이 국제기준인 8%를 넘어 12%까지 강제되기도 하였다. 

BIS 비율이란 국제결제은행이 일반은행에게 권고하는 자기자본비율 수치이다. 보통 BIS 자기자본비율이라고 불린다. BIS에서는 자기자본비율의8% 이상을 안정, 합격권으로 보고 있지만 IMF를 겪으며 국내 금융권의 비율을 12%이상으로 요구하여 무리한 적용이란 비판도 받고 있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진행한 금융구조조정은 수치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의 BIS 비율이 권고 기준보다 높고, 당기순이익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금융시스템은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2000년 금융지주회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이 설립됐고, 이들 금융기관은 기존의 상업은행중심에서 투자은행 업무도 이행할 수 있는 종합금융그룹의 위상을 확보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은행의 외형상 지표는 뚜렷하게 개선되었으나 공공성은 약화 되었다는 지적이 있다. 

사실,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168조라는 막대한 금융구조 자금을 투입하였다. 그러나 은행들이 지나치게 수익성을 추구하면서, 기업의 성장 잠재력보다는 재무제표 등 계량적 기준에 의존해 대출을 해주는 관행이 이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성장 잠재력이 큰 혁신 기업들에 대한 자금창구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고,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어, 신용불량자 양산과 사회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결과적으로,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은 건전성 지표는 개선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리스크(위험)가 큰 기업대출은 꺼리고 가계대출에 치중하는 등 수익성 위주의 영업을 해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경제대책조정회의 주재 19980508.jpg▲ 1998년 5월 8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경제대책조정회의를 갖고 중장기 경제전망과 금융 기업 구조조정 방안을 논의하는 모습.
 
 
외환위기 이후 제도개혁의 기본 방향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금융권 구조조정과 함께 기업 및 금융시스템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명시적으로 선언되지는 않았으나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목표는 금융수요자로서의 기업의 체질변화를 통해 은행차입에 의존한 선단식 기업시스템을 해체하고, 개별기업의 수익성과 재무안정성에 기초한 금융 자원의 배분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목표를 세웠다. 이는 IMF의 요구조건이기도 하였다.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거래소를 통합하고 통합거래소의 효율성, 공정성, 안정성, 혁신성을 갖춘 동북아 금융허브를 만들고자 한 시도도 있었다.

그를 위해 은행과 거래소 증권회사 등 금융기관에 선진국 수준의 준법감시시스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른 BIS 비율과 재무제표를 제공하고 또한, 시스템 리스크 방지를 위한 기업감시기능의 강화를 위해 은행중심 금융시스템을 시장중심 금융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외형적인 시도에 불구하고 한국 자본시장은 모험자본의 공급을 통한 성장이라는 자본시장 본연의 기능을 통해, 자본시장이 경제성장과 금융시장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적 논쟁을 거쳐 왔지만, 자본시장 본질의 기능 보다는 외부에 의한 형식적인 변화만 가져왔다는 생각이다.

참여정부에서 시도한 자본시장 선진화와 동북아 금융허브는 이명박정부를 거치며, 흔적조차 남겨지지 않았다.

그 동안, 은행과 증권사 등에 준법감시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 등이 갖추어졌지만 아직 형식적이고, 달성된 것은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른 BIS 비율과 재무제표 정도이다.

박근혜정부에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같이 일부 주주의 이익만을 위한 불합리한 합병에서도 시장의 제도나 시장참여자(증권사 투자은행)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특혜 상장도 같은 이유로 우리의 자본시장이 성숙되지 못하였음을 증명하는 한 예이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운영자금이나 개발 자금을 조달해 가야만 하는 자본시장에서, 삼성 같은 재벌이 자본시장을 유린하여 이익을 취하는 현상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반복되는 동안,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자본시장의 활성화 목표는 동력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IMF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 논쟁에서는 기존의 은행중심 금융시스템을 투자은행 중심의 시장중심 금융시스템으로 전환하려 했으나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다시 정체성을 겪고 있다.

은행은 건전성과 이익만을 앞세우며, 개인이나 담보 있는 대기업이나 재벌기업에 대한 여신으로 투자 리스크를 회피하며, 여전히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경제가 크게 성장하고 기업이 활성화 되려면, 시장중심의 금융시스템이 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본시장이 중소벤처기업에 신기술에 투자할 수 있는 모형자본을 공급할 수 있는 그런 시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것이 IMF 외환위기 후의 금융구조적 논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며 문재인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할 금융 정책이다
 
(다음회에 계속) 
 

참고문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자본시장의 정책방향, 2009.11/자본시장연구원
기업금융시스템 하부구조 개선방안,  이건호 ․ 김서경 ․ 이태규/한국경제연구원
미국 투자은 행의 발전과 시사, 박덕배/현대경제연구원
글로벌 금융규제의 변화와 한국 금융의 미래, 볼커 룰(Volcker Rule)을 중심으로, 김용식 한국일보 기자 | 미국 조지워싱턴대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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